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국내 의료기관들의 비급여 진료현황에 대해 “1068개 수집했다. 병·의원 모두 전체의 95% 이상”이라며 관련 자료를 조만간 정리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진료와 비급여를 병행하는 ‘혼합진료’에 대해서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와 논의한 적은 없지만 줄이는 것이 의사로서 오랜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의정갈등 속 지출이 늘어서 건보 재정 우려가 제기되는데 대해서는 “예전보다는 안정적이다. 지출이 많지 않아 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제가 이 자리를 떠난 후 ‘전 이사장이 잘못해서 재정이 파탄 났다’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아껴서 지출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27일 저녁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비급여는 우리나라에 몇 개가 있는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는데 잘 정리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올해부터 의원급 이상 전체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 현황을 의무적으로 건보공단에 보고해야 한다. 그는 “합리적으로 비급여 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료를 제공하겠다”며 “저희는 자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혼합진료에 대해서도 “비슷한 효능이 있는 진료를 섞어서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표적 미용주사제인 ‘신데렐라 주사’가 효과가 있는지, 급여진료인 물리치료와 비급여인 도수치료·온열치료를 같은 날 동시에 하는 것과 같은 혼합진료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 대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과 함께 검증을 시도해보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의정 갈등 장기화와 건강보험료의 2년 연속 동결 등 악재 속 건보 재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데 대해서는 “큰 타격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2차 병원의 진료가 늘었지만 상급종합병원 방문이 크게 줄어서 상쇄가 됐다는 설명이다. 건보 적립금을 투자해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병원 선지급금으로 2조 6000억원 정도 미리 들어갔고, 6000~7000억원이 비상진료체계 관련으로 나갔지만 급여 청구가 예전 같지 않아 현재는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정갈등이 이어져도 재정이 괜찮은지 재차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3차 병원에서 과한 소비가 워낙 많이 줄어 지출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가장 큰 문제로 보는 부분은 수가다. 의료행위별로 가치를 비교하도록 업무량과 인력, 위험도 등을 고려해 매기는 상대가치점수가 상당히 불합리한 점이 많아서 대대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정 이사장은 “폐 기능 검사가 더 어려운 기관지 내시경 검사 같은 것보다 상대가치가 올랐다”며 “의료계가 경제적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해왔는데 심평원이 이것을 합당한 시간에 잘라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건보공단은 최근 비만 기준이 되는 체질량지수(BMI) 기준을 현행 25에서 27로 상향하자고 제안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앞으로도 의료비 지출 건전화와 ‘적정진료’에 다가설 수 있도록 자료를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공단의 ‘스탠다드 1번’을 만들었다”고 자평하며 “계속해서 대표할 만한 사례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BMI 상향 제안을 두고 학계 전문가들의 반대의견이 적지 않았던 데 대해서는 “학계 반응을 보겠지만 저희는 저희의 갈 길을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BMI 25·26인 사람들을 비만이라고 걱정시키고 위고비 같은 약을 비급여로 먹겠다고 해도 용인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공단 숙원사업인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문제에 대해서는 올해 통과되지 않아서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정 이사장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의료기관 개설이나 약사가 아닌 사람의 약국 운영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 이사장은 공단이 폐암 등의 흡연자 진료비를 부담하라며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담배 소송과 관련 내년 1월 열리는 재판에 직접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담배회사가 위험 얘기를 하지 않고 담배 홍보를 하고 팔았기 때문에 폐암이 생긴게 아니냐. 일부 책임은 져야 한다”며 “저도 흡연에 관해서는 의료계 전문가다. 충분히 기회가 주어지면 의학적 의견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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