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주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간 분야의 우주기술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AI)에 이어 양자·모빌리티·로봇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해 ‘뉴 스페이스(민간 주도의 우주개발)’ 시대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공계 인재 양성의 요람인 특성화 대학의 역할을 강화해 순수 기초과학의 기틀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28일 서울경제신문이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서경 우주포럼 2024’에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우주산업 발전 방향에 대해 이같이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달 27일 출범한 ‘한국판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우주항공청이 뉴 스페이스 시대에 맞춘 민간 협력과 국제 공조를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행사에는 30년간 백악관과 나사 등을 거쳐 우주항공청의 실무 총책임자를 맡은 존 리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을 비롯해 AC 차라니아 나사 수석 기술자, 이성희 컨텍 대표,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 임종인 대통령실 사이버특별보좌관,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박영득 한국천문연구원장 등 국내외의 다양한 산학연 전문가가 참석했다.
리 본부장은 우주항공청 설립 목적에 대해 “우주 탐사와 관련한 민간 기업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고 이로 인해 우주 탐사가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했다”며 “연구 리소스(자원)를 비롯해 새로운 기술 발전을 활용하는 면에서 이전 세대는 할 수 없었던 역할을 우주항공청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우주항공청에 합류하게 된 것도 지난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정말 위대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라며 “대학과 민간 기업들을 방문하며 활용하지 못한 리소스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인력과 조직 구성 방식도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우주항공청은 올해 상반기까지 50여 명의 전문가를 채용하고 연말까지 지속적인 인재 충원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리 본부장은 “사람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혁신과 팀워크, 다양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조직을 꾸리려고 한다”며 “다양한 배경과 출신을 가진 이들이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협력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 구성 방식에 대해서는 “나사의 성공 요소들을 많이 가져오는 동시에 한국 문화에 맞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조직 구조를 잘 구성해 임팩트를 극대화하려고 한다”고 했다.
차라니아 수석 기술자는 우주항공청 출범을 기점으로 한국의 ‘우주 외교’가 한층 진화할 것으로 봤다. 그는 “우주항공청이 한국과 미국, 기업과 기업 간 우주 협력을 진작하는 데 큰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한국 업계의 목소리를 전 세계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이 추진하는 우주정거장(루나 게이트웨이) 건설에 유럽과 일본은 물론 아랍에미리트(UAE)도 참여한다”며 “20년 전만 하더라도 우주정거장에 UAE가 참가한다는 상상을 하기 어려웠겠지만 이제는 그만큼 국가 간 협력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우주 경제’의 범위가 예상보다 더욱 광범위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민석 항국한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은 “인공위성만이 우주 경제가 아니고 우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우주 경제와 연관된다”며 “예를 들어 화성에 인프라를 지으려면 로켓뿐 아니라 건설 기술이 필요한데 이는 플랜트 산업과 연관된다”고 말했다. 우주 지상국 서비스·위성영상 기업인 컨텍의 이성희 대표도 “국내 우주산업은 앞으로 어떤 사업과도 연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뒤이어 열린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총장포럼에서는 첨단산업 경쟁력의 기반이 될 인재 육성 전략이 공유됐다. 낸시 입 홍콩과학기술대 총장은 홍콩과기대가 글로벌 대학 평가 아시아 최상위권으로 발돋움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맞춤형 다학제’를 강조했다. 그는 “학생 한 명마다 관심 분야를 파악하고 각자 전공을 어떻게 설계할지 논의해서 진행한다”며 “실제 산업 현장에 나갔을 때 직면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에 발맞춰 특성화 대학의 연구 역량을 강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은 “해외 대학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는 것처럼 인공지능(AI)과 로봇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실험실’이 나오고 있다”며 “신물질이나 신약을 개발할 때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실험실과 대학원생에만 의존하는 실험의 결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도 세계적인 연구 동향을 찾아보며 전략적인 연구 기획력과 재정적인 능력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본다”며 “우리 대학도 이런 것을 갖추며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도 “이전에는 선진국이 하던 연구를 이어받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세상에 없는 연구를 하자’는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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