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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트럼프 ‘K조선 협력 요청’의 함정

■김상용 건설부동산부장

美 해군 전투력 급감 위기의식서 비롯

러스트벨트 부흥과 일자리 창출도 꾀해

韓 ‘기술 유출, 산업 고사’ 함정 빠질 수도

K조선 지렛대로 협력 청사진 만들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요청했다. 트럼프는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선박 건조 능력을 언급한 뒤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보수와 수리, 정비(MRO)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한국 조선업 협력 요청 소식이 알려진 뒤 K조선의 미국 진출 가능성에 조선업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조선사가 미국에 진출하거나 미국 조선업계와 협력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트럼프가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요청한 것은 미국의 해군 전투력 급감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미중 갈등 속 패권 경쟁 무대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해군의 전투력이 중국에 비해 뒤처지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미국 전략문제연구소가 6월 공개한 ‘초국가적 위협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전함(234척)은 이미 미국 전함(219척) 규모를 뛰어넘었다. 군함의 MRO 경쟁력도 잃은 지 오래다. 실제로 2021년 10월 좌초된 핵 추진공격 잠수함인 코네티컷함은 수리에 31개월이나 걸릴 정도라고 한다. 조선업 경쟁력이 뒤떨어지면서 군함 규모에서부터 건조 능력, 수리 능력 모든 면에서 중국에 밀린 것이다. 보고서는 미국 해양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 확대를 권고했다. 최근 한화오션이 미국 현지 조선소를 인수하고 미국 MRO 사업을 수주한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이 같은 자국의 조선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4월 ‘국가 해양전략을 위한 의회지침’을 발표했다. 지침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무역의 80%가 해운을 통해 이뤄지지만 국가 간 외항 운송을 담당하는 미국 국적 선박은 200척 이하, 중국 국적 선박은 7000척 이상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미국이 수주한 선박은 5척, 중국은 1700척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80여 개에 달했던 미국 대형 조선소는 20개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조선소 인력은 15만 3000명인 반면 중국 인력은 60만 명에 달한다. 선원도 미국은 1만 2000명, 중국은 170만 명이다. 보고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가해양위원회 설립과 조선해운인력 양성 등의 내용을 담은 10가지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원양선박을 건조·수리할 수 있도록 해운(공급망)·조선업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투자세액 공제와 인센티브도 제안했다. 조 바이든 정부가 주도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처럼 조선업지원법 등을 통해 조선산업의 부흥을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의 조선업 협력 발언은 자국 우선주의와 러스트벨트의 부흥과도 맥이 닿아 있다. 트럼프 정부가 한국 조선사와의 협력을 통해 미국 조선업을 되살린다면 일자리 창출을 꾀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 조선사가 미국에서 군함과 선박 건조 규모를 늘리면 아주 오래전에 쇠퇴기에 진입한 철강산업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다. 경쟁력이 한참 뒤떨어진 미국의 조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처럼 신규로 건조된 선박과 이를 위한 선박용 철강제품인 후판에 보편관세를 부과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협력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결국 K조선과의 협력으로 조선철강업 부활과 러스트벨트 부흥에 나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건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내수 침체와 고용 악화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내년 성장률이 1%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트럼프와 하루 빨리 만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치밀한 협상을 통해 우리의 경제안보 지형을 다져야 한다. 트럼프가 띄운 한미 조선업 협력을 우리 기업의 미국 진출로만 판단하면 국내 조선업의 기술만 통째로 내주고 국내 철강산업을 고사시키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한미 조선업계 협력을 지렛대로 삼아 우리가 중장기적으로도 실익을 얻을 수 있는 청사진을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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