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 경영권과 한미·OCI그룹 통합을 놓고 벌인 한미 오너 일가의 분쟁이 결국 소액주주의 손에 결과가 갈렸다. 전날까지 2%포인트 차이로 열세를 보였던 창업주 고(故) 임성기 전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 측은 소액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마지막에 판을 뒤집었다. 임종윤 전 한미약품 사장은 “주주들이 원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며 “앞으로 하고자 하는 비전들을 정식으로 공유해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28일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 호텔에서 열린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임종윤 형제 측이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로 선임된 것을 포함해 형제 측이 주주 제안한 5명의 이사진 선임 안건이 모두 가결됐다.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과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 등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 모녀 측이 제안한 신규 이사 후보 6명의 이사회 입성은 불발됐다.
이날 주총 직전까지 임종윤 형제 측은 지분 다툼에서 다소 열세였다. 전날까지 형제 측이 확보한 공개 우호 지분은 전체의 40.57%로 송 회장 모녀 측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42.66%보다 약 2%포인트 적었다.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회장(12.15%)의 마음을 얻으며 승기를 가져가는 듯했지만 이번 표 대결의 ‘캐스팅 보트’로 여겨졌던 국민연금(7.66%)이 모녀 측을 지지하면서 판세가 불리해졌다. 더욱이 형제 측이 양 그룹 통합에 반대하며 수원중앙지법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도 기각되며 남은 카드는 ‘소액주주 결집’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형제 측은 소액주주의 표심을 잡으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이날 기준 한미사이언스의 의결권 주식은 6776만 3663주, 주총 출석 주식 수는 5962만 4506주로 전체의 88.0%에 달했다. 출석 의결권 수 대비 찬성 비율은 형제 측이 52%, 모녀 측이 48%이었다. 주총 의결에 참여한 소액주주 등의 지분 4.5%정도가 판을 가른 셈이다.
형제 측의 승리가 확인되자 현장에 참석한 소액주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소액주주 표심이 형제 측으로 기운 것은 ‘이종 간의 결합’인 OCI와의 통합에 대한 의구심, 송 회장 경영 시기에 낮아진 주가에 대한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임종윤 사장은 주총이 끝난 직후 기자를 만나 “한미사이언스 주주라는 원 팀은 법원도 이기고, 연금도 이기고 다 이겼다”며 “앞으로 주주들이 원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하고자 내놓은 비전들이 많이 공격 받고 실없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정식으로 공유해 가겠다”며 “자유롭게 일하고 배우는 회사, ESG에 부합하고 밸류업이 성립되는 회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표 대결을 펼친 송 회장과 임 부회장에 대해서는 “어머니와 여동생은 이번 계기로 실망하셨겠지만 같이 가기로 했고 회사가 여러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나간 분들이 다시 오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종훈 전 한미정밀화학 사장도 “앞으로 저희 가족들이 다 같이 얘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 것”이라며 “회사 발전에 대해서 집중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형제 측이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OCI그룹과의 통합은 무산됐다. 대신 형제 측이 제시한 한미그룹 청사진이 그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종윤 전 사장은 한미약품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5년 안에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해 한미약품을 글로벌 제약사로 키울 계획이다. 투자 유치금으로 위탁개발(CDO), 임상대행(CRO) 등을 강화해 순이익 1조 원 달성과 시가총액을 50조 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 한미약품의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100개 이상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나서 장기적으로는 한미그룹을 시가총액 200조 원 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그림이다.
당초 이날 주총은 오전 9시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의결권 있는 주식 수를 확인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며 개회가 세 시간 반가량 지연됐다. 표결까지는 약 6시간이 걸렸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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