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용평가사들이 태영건설(009410)의 기업구조개선사업(워크아웃) 신청 직전까지 태영건설 신용등급을 투자적격등급인 ‘A-’급으로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나서야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해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3대 신평사인 한국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가 28일 태영건설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급에서 투기등급인 ‘CCC’급로 낮췄다. 이날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 약 4시간이 지나서다.
신평사는 재무정보를 토대로 기업들의 신용도를 분석, 시장 참여자들에게 해당 기업의 신용등급을 제공한다. 금융 전문 기관이 아니라면 개별 기업의 채권에 대해 신뢰도 높은 평가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신평사의 분석으로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을 줄인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번 태영건설 사태에서는 신평사들이 자본사장의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은 워크아웃 신청 당일 오전까지도 ‘A급’의 하위 분류인 ‘A-급’이었다. ‘A급’은 “원리금 지급능력이 우수하지만 상위등급보다 경제여건 및 환경악화에 따른 영향을 받기 쉬운 면이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A급’보다 상위 등급인 ‘AA급’, ‘AAA급’과 하위 등급인 ‘BBB급’까지를 부도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에서 투자적격등급으로 분류한다. BB급 이하는 투기등급이다.
신평사들은 하반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업계 전반에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태영건설의 신용등급 전망만 하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20일)와 나이스신용평가(27일)는 태영건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하향검토’로 내렸다. 심지어 한국기업평가(034950)는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만 전망을 낮췄다. ‘부정적’ 전망은 “중기적(6개월~2년)으로 등급의 하향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만약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근거로 태영건설 회사채를 매수한 투자자라면 큰 손실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 7월 19일 만기가 돌아오는 태영건설 공모채 ‘태영건설68’은 이날 장내시장에서 전 거래일 대비 29.99% 하락한 6124원에 거래를 마쳤다. 표면금리 2.59%인 이 채권의 현재 수익률은 102.33%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평사들이 적어도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B+급’이나 그에 준하는 ‘BBB급’으로 하향했어야 했다”며 “기업의 평가 수수료에 매출을 의존하는 신평사 구조상 태영건설 눈치보기를 한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뒷북 대응’ 지적에 “태영건설이 그룹 내 우량자산이 많은데도 워크아웃을 이렇게 빨리 신청할 지 예상 못했다”며 “신평사가 신용등급을 급하게 낮출 경우 오히려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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