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대규모 손실이 예고된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해 은행권을 강하게 질타하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 원장은 29일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일부 은행에서 ELS와 관련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마련했다고 운운하는 것은 자기 면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상품 가입 시) 자필을 받았다든가 하는 등의 작업을 근거로 들며 불완전판매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입장인 듯한데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 원칙을 들여다보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적합성 원칙은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상품을 권유할 때 소비자의 재산 상태와 투자 경험 등에 비춰 적합한 투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권유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말한다.
이 원장은 이어 “ELS의 상품 구조를 노령 소비자, 금융투자 상품 경험이 없는 소비자가 짧은 시간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자체도 고민해볼 지점”이라고 꼬집었다. 또 “노후 보장을 목적으로 정기예금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70대 고령 투자자에게 수십 %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맞느냐”며 “저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안 읽히는 게 ELS 상품 약관인데 노인들이 그냥 자필 서명하고 질문에 ‘네, 네’ 답변했다고 해서 상품을 권유한 은행이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원장은 ELS 판매가 가장 많았던 KB국민은행과 관련해서는 “일부 은행에서 ELS 판매 한도가 있었다고 운운하는데 수십 개의 증권사가 합친 것보다 KB국민은행에서 판 게 많다”고 했다.
은행권은 당국이 ELS 관련 별도의 조치를 내놓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NH농협은행이 은행권 처음으로 지난달부터 전국 각 지점에서 ELS 판매를 중단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홍콩H지수가 편입된 주가연계신탁(ELT)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홍콩H지수 편입 ELS 공급액 비중을 30% 이내에서 축소 운영하고 있고 하나은행은 판매 중단과 관련해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아직 ELS 판매 중단과 관련해 당국으로부터 전달받은 지침은 없다”면서도 “고객의 니즈에 맞게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금융사의 역할마저 제한한다면 금융 산업 자체가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