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 이후 은행권의 은행채 발행 한도를 관리해오던 방안을 폐지하기로 했다. 고금리 예적금 상품의 대규모 만기 도래 등으로 은행들의 자금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채 한도를 계속 제한할 경우 과도한 수신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일각에서는 채권시장에 ‘수급 쏠림’이 재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당국은 올해 4분기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말 은행들이 고금리로 대거 유치한 예적금 상환을 앞두고 은행채 발행을 제한할 경우 재차 수신 경쟁이 과열되며 차례로 2금융권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 배경을 설명했다.
금융위는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의 여파로 채권시장의 불안이 심화하자 은행채 발행을 사실상 중단시키고 이후 차환 목적의 은행채 발행(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00%)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왔다. 올해 3월부터는 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25%까지 발행을 허용하고 7월부터는 분기별 만기 도래액의 125%로 발행 규모를 관리해왔다.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 통로가 막히자 은행들은 지난해 말 예금금리를 연 5%대까지 높이며 수신 경쟁에 뛰어들었고 2금융권은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연 6%대 중반에 이르는 특판을 판매했다. 금융권에서는 당시 늘어난 수신 규모를 100조 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달부터 은행들이 대규모 자금 상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채권 발행 통로를 열어주지 않으면 다시 수신을 통한 경쟁적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하고 발행 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발행 한도가 폐지되면 은행채는 올해 4분기에도 순발행(채권 발행>상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는 약 4조 7000억 원 규모로 순발행됐다. 은행채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5월 한 달을 제외하고 줄곧 순상환 기조를 이어왔다. 그러다 예적금 만기 도래에 따른 자금 수요 증가로 은행채는 올해 8월 3조 7794억 원 순발행으로 돌아섰고 9월에는 그 규모가 더 확대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의 이번 조치로 은행채 발행이 늘며 우량채인 은행채로 수요가 몰리는 쏠림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이 때문에 회사채금리가 급등하거나 은행채금리에 연동한 대출금리가 오르는 등의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채를 발행할 경우 회사채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면밀히 살펴보고 차후 어떻게 대응할지도 함께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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