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로봇 1위 HD현대로보틱스는 최근 주행 중 진동에도 음식이 흔들리지 않는 ‘모바일로봇’ 특허를 등록했다. 굴곡과 장애물이 있는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 골목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음식을 온전하게 배달하기 위한 기술이다. 로봇 본체와 음식을 놓는 선반 사이에 진동 흡수 부재를 써 진동을 음식에 전달되지 않게 하는 식이다. HD현대로보틱스 측은 “이 모바일로봇은 일반 도로를 (자율)주행하며 음식을 배달할 수 있고 정해진 목적지에 물건을 배달하는 로봇도 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선두 로봇 기업들은 협동로봇 다음 로봇으로 자율주행 기반 ‘모바일로봇’을 점찍고 물밑 경쟁을 시작하고 있다. HD현대로보틱스·두산(000150)로보틱스·한화(000880)로보틱스 등은 모바일로봇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기계공학 중심 로봇 사업에서 인공지능(AI) 등 정보기술(IT)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산업용로봇 강자인 HD현대로보틱스는 자율주행, AI 기반 인지 기술, 멀티 제어, 원격 관제 기술 등 IT 분야 연구개발(R&D)에 본격 착수했다.
HD현대로보틱스는 자동차 조립용 산업로봇이 주력 사업부였지만 최근 서빙로봇·방역로봇 등 자율주행이 기반이 되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IT 분야로 연구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협동로봇 1위 두산로보틱스도 협동로봇 다음 단계로 모바일로봇을 낙점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자율주행 기반 모바일로봇 시장 진입을 단기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연말 기업공개(IPO)로 공모한 자금 중 일부를 자율주행 로봇 기업 인수에 쓴다는 계획이다.
두산로보틱스의 한 관계자는 “협동로봇이 각종 공장이나 창고에서 물류 자동화에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멈춰 있는 협동로봇에 이동성을 추가해 협동로봇 활용처를 확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위해 기계 중심 연구에서 비전 AI 등 소프트웨어 사업화도 진행한다는 전략이다.
10월 출범 예정인 한화로보틱스도 모바일로봇에 힘을 주고 있다. 한화모멘텀 내 공장자동화 사업부에 속해 있던 한화로보틱스는 시존 협동로봇과 무인운반차량(AGV) 사업에 대한 시너지를 내 2026년에는 자율주행 기반 건물 관리 로봇, 전기차 충전 로봇 등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 초 삼성전자로부터 투자를 받은 레인보우로보틱스 역시 기존 협동로봇에서 나아가 자율주행 기반 서빙로봇 상용화를 올해 안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산업용이나 협동로봇은 특정 공정에 고정돼 사용된다는 공간의 한계가 명확하다”며 “반면 움직이는 모바일로봇은 적용 공간이 확대되면서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크게 넓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로봇이나 협동로봇처럼 한곳에 고정돼 팔만 움직이는 로봇을 생산하던 기업들이 움직이는 모바일로봇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AI나 비전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협동로봇이 공정 자동화 등 생산 중심 로봇이었다면 모바일로봇은 이에 더해 배달·서빙과 같은 소비 시장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IT 인프라 저변이 우수한 것도 모바일로봇 개발이 빨라지는 이유다. 산업로봇이나 협동로봇 분야는 독일이나 일본처럼 정밀 기술 분야가 우수한 국가들이 산업을 선도했지만 모바일로봇은 비전·AI와 같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중요해 주요 기업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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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 현상도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 개발을 자극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서빙로봇 시장은 2021년 600억 원에서 올해 2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는 계열사 식음료 매장에서 서비스 로봇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쿠팡도 물류창고 내 자율운반 로봇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미국도 최근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모바일로봇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최저임금은 15.5달러(약 2만 원)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실리콘밸리 소재 로봇 스타트업인 베어로보틱스의 하정우 대표는 “(자율주행 기반) 서비스로봇은 매우 빠르게 도입이 늘어나고 있으며 물류창고에서 쓰이는 로봇은 미국과 중국이 도입률에서 세계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며 “시간이 갈수록 더 나은 일자리와 편한 환경을 추구하기 때문에 로봇으로 인해 변화된 ‘3D업종’은 변화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모바일로봇에 대한 연구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협동로봇은 대중화 속도가 나면서 가격과 제품군 확대 경쟁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제조용 협동로봇에서 식음료(F&B) 분야까지 제품군을 넓히고 가격도 내리는 등 산업 현장에서 로봇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실제 두산로보틱스는 커피 제조가 가능한 ‘닥터프레소’ 협동로봇의 가격을 600만 원가량 내리는 프로모션을 이달부터 진행한다. 닥터프레소는 두산로보틱스가 출시한 ‘바리스타 로봇’이다. 닥터프레소가 만들 수 있는 음료는 아메리카노부터 청포도에이드까지 17종에 달한다. 현재까지 기업들의 복지용 카페부터 개인 사업자의 무인 카페까지 닥터프레소를 찾는 고객들이 많다.
두산로보틱스는 올 초부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경쟁사 대비 다소 낮은 가격을 책정하며 시장을 잠식해오고 있다. 두산로보틱스의 가반 하중 10㎏급 협동로봇의 가격은 4000만 원대로 경쟁사보다 다소 저렴하다. 일본 로봇 기업 화낙의 제품은 4500만 원대 안팎이다. 또 협동로봇 세계 1위 유니버설로봇의 동급 제품 대비 10% 싼 가격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제품군을 다양화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전략도 통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꾸준히 제품군을 늘려 현재 6개 로봇 라인업을 갖췄다. 이 중 H시리즈나 E시리즈는 출시 목적 자체가 ‘저렴한 가격’으로 무게와 크기를 줄인 것이 특징이다.
국내 협동로봇 분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한화로보틱스는 두산처럼 제품 라인업을 대폭 늘리고 있다. 회사는 최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공작기계 전시회 EMO2023에 참가해 신제품 HCR-14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초 3개였던 협동로봇이 4개로 늘었다. 이 로봇은 가반 하중 14㎏으로 로봇이 들 수 있는 최대 무게를 늘렸다. 가반 하중이 높아지면 로봇 자체 무게도 당연히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한화는 반대로 무게를 경량화하는 데 성공했다. 한화 역시 현재 F&B 푸드테크용 협동로봇을 개발하고 출시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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