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인천의 한 폐가. 사람은커녕 귀신도 살기 어려워 보이는 허름한 곳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지금은 세계적 스타가 된 양혜규의 첫 번째 개인전 ‘사동 30번지’다.
사동 30번지는 인천에서도 서해 연안부두에 위치한 곳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당연히 이 장소는 작가가 사용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쓰레기통을 방불케 했다. 전기와 수도도 끊겨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작가는 이 장소에서 ‘청소한다’와 ‘전기를 연결한다’라는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한다. 이 과정은 전시의 일부이기도 했다. 청소와 전기 문제가 해결되자 작가는 깨진 거울, 조명 기기, 벽걸이 시계, 빨래 건조대와 의류 행거 등 작품이라기보단 또 다른 폐가의 버려진 물건에 가까운 오브제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전시를 관람하는 방법은 더욱 기괴했다. 관람객은 직접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전시를 관람한 후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참으로 불친절하고 낯선 방식이었지만 이 전시는 오늘날까지 양혜규라는 작가를 설명하는 상징이 된다.
‘사동 30번지’의 폐가에 비해 좀 더 말끔해진 한옥에서 당시를 연상케하는 양혜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장소는 국제갤러리 내부에 있는 한옥건물이다. 현대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국제갤러리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 작은 한옥에는 ‘동면한옥’ 전시가 시작된 직후(8월 30일)부터 작품을 관람하고 인증샷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MZ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국제갤러리는 한옥을 본격적으로 전시장이 되기 전 휴면 상태에 있는 공간을 양혜규 작가의 전시로 활용하기로 했다.
양혜규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글로벌 스타로 성장했다. 4월 벨기에 겐트 현대미술관에서는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 일본 모리미술관은 20주년 특별전에서 작품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큰 공간을 양혜규에 할애했다. 하지만 전시 방식은 여전하다. 작가는 여전히 천장 조명을 마다하고 야간에도 손전등에 의존하며 공간을 꾸민다.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윽한 향기 대신 한약재 냄새를 맡게 되고, 협소한 한옥 공간에 방치된 듯 바닥에 늘어져 있는 여러 오브제를 피해서 걸어 다녀야 한다. 입구 안 쪽에서는 작가가 10여 년간 꾸준히 제작한 모노프린트를 이용한 판화 작업도 볼 수 있다. 표면에 앉은 빗방울, 먼지, 꽃가루 이 모든 것들이 작품의 재료다.
‘동면한옥’은 10월 8일까지 열린다. 국제갤러리는 오는 13일과 16일에 한해 야간개관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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