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제조업의 부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과의 패권 다툼의 원인도 있지만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공급망을 구축하지 않는 한 국가의 경쟁력 유지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다. 미국의 제조업은 1950년대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7%, 노동인구의 31%를 고용했지만 2010년에는 각각 12%, 9%로 급감했다. 금융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을 대체했지만 반도체·배터리 등 공급망 위기 등이 불거지면 미국 역시 그 약한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이 공급망을 경제안보의 한 축으로 부각하면서 글로벌 제조업 재편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반면 폐허에서 제조업 강국의 신화를 쓴 한국은 갈수록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노조 문제부터 규제·행정 등 켜켜이 쌓인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30년 뒤에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마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경제 단체 부회장들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제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당장 해야 할 근본적인 ‘실천 전략’을 제시했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13일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통해 상품을 수출하지 않으면 사실상 외화 획득이 불가능하고 내수 업종으로는 국내시장 규모를 넘어선 성장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제조업 수출로 달러를 벌어오지 않으면 기본적인 에너지 안보조차 지켜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의료·콘텐츠·소프트웨어 등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15.9%로 20여 년간 정체돼 있다. 영국(48.1%)이나 미국(31.0%) 등 경쟁국은 물론 세계 평균(22.3%)보다 낮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것과 별도로 당장의 생존을 위해 제조업 분야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조 대기업들은 지원은커녕 ‘역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경제 단체의 지적이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반도체의 경우 팹(공장) 1기당 30조 원 이상의 투자 자금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는 없는 은산분리 규제로 더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며 “구글이나 인텔과 같은 삼성전자의 경쟁자들은 산하에 금융회사를 거느리면서 전략산업에 대해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34위에 불과한 법인세 경쟁력도 기업 투자를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우 부회장은 덧붙였다.
한국 제조업의 고질적인 약점인 경직적 노동 문화는 이제 기업을 후퇴시키는 근본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 개혁을 국정과제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입법 측면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일명 ‘노란봉투법’ 등이 잇달아 국회 문턱을 넘으며 기업인들의 투자심리를 극도로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손발을 묶는 독소 조항이라는 것이다.
국내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제조업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기업 규모가 해외 경쟁사의 10분의 1에 불과한데도 대기업집단에 지정돼 온갖 규제에 묶이다 보니 크게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우 부회장도 “대한상의가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해보니 과제 10개 중 9개가 국내에만 있는 규제로 막혀 있던 사업이었다”며 “신산업과 관련된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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