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마진 확대로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기업 이윤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나라는 기업 이윤보다는 수입물가 영향이 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의 대규모 적자로 물가를 억눌렀다는 평가다.
1일 한국은행 조사국은 ‘기업이윤과 인플레이션: 주요국과의 비교’라는 블로그를 통해 지난해 우리나라 물가 상승에 대한 기업이윤 영향이 크지 않은 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유로 지역을 중심으로 기업이윤 증가로 물가가 오르는 그리드플레이션 논란이 제기되자 우리나라 상황을 점검한 결과다.
조사국은 소비자물가와 유사한 흐름이 관찰되는 민간소비지출 디플레이터(deflator) 상승률을 피용자보수, 영업잉여, 세금, 수입물가 등으로 기여도를 분해해 분석했다. 국가 전반의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개념상 수입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분석이 가능한 민간소비지출 디플레이터를 활용했다. 물가 상승은 노동자 임금(피용자보수), 기업 이윤(영업잉여), 정부 수입(세금) 등 명목 소득 증가로 이어지거나 수입물가 상승과 관련돼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디플레이터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유로나 미국과 달리 기업 이윤인 영업잉여의 영향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이후 영업잉여 기여도 추이를 보면 유로와 미국은 꾸준히 확대됐으나 우리나라는 2021년 정보통신(IT) 업황 호조로 증가했다가 2022년 상당 폭 감소했다.
우리나라에서 영업잉여 기여도가 낮게 나타난 것은 유로나 미국 등 다른 지역에 비해 글로벌 공급망 차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영향을 적게 받아 수급불균형에 따른 기업의 가격 인상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한국전력공사나 한국가스공사 등 전기·가스·수도업의 영업잉여 기여도가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상승 부담이 전기·가스요금에 적게 반영되면서 관련 공기업이 큰 폭을 적자를 내는 대신 물가가 더 상승하지 않도록 기여했다는 것이다.
한은 조사국은 지난해 국내 물가의 큰 폭 상승은 수입물가에 주로 기인하고 영업잉여나 피용자보수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평가했다. 장병훈 한은 조사국 과장은 “정책당국의 물가안정 노력과 더불어 가계와 기업의 과도한 임금 및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등 고통 분담을 하면서 이차효과 확산이 제약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 수입물가가 상당 폭 하락한 만큼 피용자보수나 기업이윤이 큰 폭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민간소비지출 디플레이터 상승률은 둔화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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