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EU)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 전쟁에 뛰어든 가운데 삼성전자의 ‘투트랙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치킨게임 전략을 자제하면서 유연하게 대응하되 장기적으로는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투자 자금을 쏟아부어 초격차를 유지하는 해법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6일 “주요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수십조 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선언하면서 삼성이 힘으로 찍어 누르는 생존 경쟁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며 “현재와 미래에 모두 대응하는 삼성의 신전략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시경제 여건에 따라 금리 방향을 바꾸는 중앙은행처럼 삼성이 일종의 ‘스마트 피벗(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당장 삼성의 감산에 반도체 시장은 업턴(호황 전환)으로 답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웨이퍼 투입량을 15~20% 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DDR4 16Gb(기가비트) 2Gx8 3200㎒’의 현물 가격은 지난주 2.99달러로 저점을 찍은 뒤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시설 투자는 경쟁사들을 압도한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D램 시설 투자 금액은 100억 달러(약 13조 원)로 전 세계 D램 설비투자액(약 210억 달러)의 절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년 전 세계 D램 설비투자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했던 비율이 약 39%였던 점을 감안하면 주요 업체들이 투자를 줄이는 사이 삼성은 ‘나 홀로’ 투자를 이어온 셈이다. 삼성의 올해 낸드 시설 투자는 106억 달러로 2위부터 6위까지 5개 업체의 투자액을 모두 합한 액수(88억 달러)보다 많을 것이라고 트렌드포스는 예측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경쟁자인 대만 TSMC가 올해 시설 투자를 최대 10%가량 줄일 것이라고 예고한 것과 달리 삼성은 평택과 미국 테일러시에서 집중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에서도 삼성은 1분기 6조 5800억 원을 기록해 5조 1000억 원가량을 투자한 인텔과 TSMC(약 1조 6000억 원)를 따돌렸다.
김용석 성균관대 교수는 “전 세계에서 과열 경쟁이 일어나 너무 많은 반도체 팹이 지어지는 것이 문제”라며 “미래의 치킨게임에 초격차 투자와 기술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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