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비(非)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한은의 제도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비중이 이미 은행을 넘어선 만큼 금융안정 달성을 위해선 한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총재는 12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창립 73주년 기념식에서 “저출산·고령화 등 내부 요인 뿐 아니라 팬데믹 이후 뉴노멀, 세계 경제의 분절화, 지정학적 갈등, 인공지능과 같은 혁신적 기술이 경제 전반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며 “새로운 환경에 맞게 과감히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은의 적극적 역할 변화가 요구되는 부문으로 비은행 금융기관을 꼽았다. 그는 “지금까지 한은의 주된 정책 대상은 은행이었고, 한국은행법에서도 금융기관은 은행만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비중이 이미 2000년대 들어 은행을 넘어섰고, 한은 금융망을 통한 결제액 비중과 은행·비은행 간 연계성도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은행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국민경제 전체의 금융안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할 수 없는 만큼 감독기관과 정책 공조를 강화하고 제도 개선을 통해서라도 금융안정 달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유동성 관리 수단의 유효성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기조적 경상수지 흑자로 국외 부문으로부터 대규모 유동성이 계속 공급됐기 때문에 한은의 유동성 관리도 이를 흡수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췄다”며 “그러나 대내외 경제 구조가 달라져 경상수지 기조는 물론 적정 유동성 규모 등이 변할 수 있는 만큼 평상시에도 탄력적으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도록 제도나 운영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모바일뱅킹 등 정보기술(IT) 발달에 대비한 상시적 대출제도와 같은 정책수단 확충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기관 간 자금 흐름이 대규모로 신속하게 이뤄지고 위기 전파 속도도 그만큼 빨라졌다”며 “상시적 대출 제도 등 위기가 감지될 경우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의 확충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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