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농성 이유)을 잘 모르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은 '노동조합이 또 저러고 있네'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죠. 외부로 알리지 않았지만, 저희가 위생 문제를 잡아낸 경우도 많습니다. 제대로 된 노조가 있어야 (파리바게뜨에서 만드는) 먹거리가 더 안전해진다는 점을 알아주세요."
제빵기사인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 지회장이 SPC 본사 앞에서 벌여온 단식 농성을 53일 만에 멈춘다.
파리바게뜨 지회 관계자는 18일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지회장은 단식 30일이 넘어갔을 때부터 단식을 멈춰야 한다는 권유를 계속 받았다”며 “지회장은 오늘 오전까지도 단식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오후에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임 지회장의 단식은 한계를 넘었다. 의사들은 임 지회장에게 혈당이 너무 떨어졌다고 당장 단식을 중단하라고 권유했다. 이처럼 장기간 단식은 몸에 심각한 후유증이 올 수밖에 없다. 임 지회장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단식 중단 이유에 대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지회 관계자는 “앞으로도 사측과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 지회장은 2017년 SPC가 고용노동부 조사로 드러난 불법파견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노조를 만들었다. 그는 SPC가 이듬해 불법파견 해결책으로 약속했던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SPC의 노조원에 대한 승진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추가로 드러나 고용노동부가 관련 사안을 수사하고 있다.
일련의 사태 해결을 위해 파리바게뜨지회와 SPC는 그동안 수차례 교섭을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단순 합의문을 작성하기에는 불법파견, 노조탄압, 복수노조, 양대노총 등 너무 많은 사안이 장기간 실타래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임 지회장은 "회사에서는 억울한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며 "진짜 현장 기사(제빵기사)들이 무엇을 힘들어하고 화를 내고 있는지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SPC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는 대부분 이행됐다"며 "노조 전임자와 다른 노조로 간 노조원 복귀가 남았는데, 두 부분은 회사가 약속할 수 있는 권한을 넘어선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SPC의 대표교섭노조인 PB파트너즈 노조도 가세했다. 노조는 최근 성명을 통해 "임 회장의 단식은 안타깝지만, 파리바게뜨지회의 요구안을 사측이 수용하면 안 된다"며 "적법절차에 따라 확보한 우리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사태에서 고용노동부가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고용부는 불법이 없다면 단일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에 공식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없이 중립선을 지켜왔다. 다만 물 밑에서 노사가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해왔다. 작년 8월부터 50여일간 이어온 현대제철 협력사 노조의 제철소 불법 점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고용부 산하 천안지청이 양 측의 협의를 이끌고 점거를 푸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안은 노사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파리바게뜨지회의 장기간 농성을 두고 점주들 사이에서도 빨리 해결책이 나와야 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점주는 “불법파견 문제는 해결됐다고 알고 있는데 노조가 불매운동까지 벌인다고 해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 지회장은 "고용부 직원이 두 번 찾아와 단식을 만류하고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며 "하지만 고용부가 작년 7월 제기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11일 취임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파리바게뜨지회 문제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이다. 노동계 출신인 이 장관은 16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 ‘동지’라는 표현을 쓰는 등 노동 현안에 대한 관심과 중재자로서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이 장관은 전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만나 "노사를 막론하고 산업현장의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르면 내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면담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는 파리바게뜨지회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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