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강원 한 농가에서 일어난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임금 체불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 그동안 상당수 계절근로자들은 불법 수수료를 떼가는 브로커에 의해 착취 당하는 등 심각한 인권 유린 피해를 입었다.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국격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본지 7월 30일자 1·6면 참조
고용부는 1일 강원도 양구군에 있는 한 농가에서 일했던 필리핀 국적 계절근로자 임금 체불 진정건을 조사한다고 밝혔다. 계절근로자 91명은 약 2년 동안 농가(고용주)가 브로커 업체에 제공한 수수료 약 12억 원에 대해 자신들의 임금이라고 진정서를 냈다. 고용부는 이번 사건을 ‘집단 임금 체불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는 계절근로자들의 주장이 신빙성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관할지청인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강원지청에 전담팀을 구성할 만큼 고용부는 조사 속도를 높일 방침이다.
관할 지청은 임금 체불 조사뿐만 아니라 브로커 업체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이미 초기 수사에서 브로커 업체가 합법적인 인력 중개 업체를 사칭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브로커 업체가 무허가 인력 중개 업체라면 근로기준법 제9조인 ‘중간착취의 배제’ 조항을 어겨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9조는 법률을 위반해 영리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다른 근기법 조항 중 처벌 수위가 가장 세다.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다. 만일 계절근로자들의 고용주가 브로커 업체의 불법을 알고도 도왔다면 공범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전국 각 지역의 계절근로자 실태 조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계절근로자 제도는 농어촌의 부족한 일손을 지원하기 위해 2017년부터 시행됐다. 올해 13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약 7만 5000명이 계절근로자 신분으로 일한다. 하지만 계절근로자 제도는 고용부가 운영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달리 법적 보호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고용허가제는 우리나라와 국가(송출국) 간 인력 교류 계약을 맺고 입국부터 생활까지 관리한다. 반면 계절근로자 제도는 지자체와 외국 지자체가 업무협약을 맺고 일할 인력을 구하기 때문에 절차와 관리가 느슨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 최대 9년 8개월 일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와 달리 계절근로자의 체류 기간은 8개월 이내다. 계절근로자 제도의 관계 부처도 법무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지자체로 분산돼 책임과 제도 공백이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계절근로자는 한국 입국을 돕겠다면서 접근한 브로커의 임금 착취부터 한국에서 인신 매매까지 다양한 범죄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초 필리핀은 전남 해남에서 자국민이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며 계절근로자 송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계절근로자에 대한 제도권 내 보호 강화는 내년부터나 시작된다. 올해 4월 국회는 계절근로자 관계 부처의 역할을 구체화하고 이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내년부터 시행될 이 법안에 따라 계절근로자 브로커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지지만 실효성을 두고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인권 단체 관계자는 “브로커들을 섣불리 제도권 내 편입시키기라도 한다면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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