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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의 그림]천으로 지은 한옥·기하학적 벤치…예술을 품은 '아트포트'

[인천국제공항 제1,2여객터미널]

천장에 매달려 있는 서도호 '집속의 집'

다음 세대로 계승 발전되는 한국성 표현

소수영 '아트벤치' 휴식 장소로도 제격

佛 그자비에 베일랑 作 '그레이트 모빌'

높이 18.5m 달해 2터미널 랜드마크로

유물전·문화재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

K컬처 플랫폼·홍보 전초기지로 거듭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들어서면 공항의 첫인사처럼 만나게 되는 서도호의 2020년작 ‘집 속의 집’.




공항은 여행의 시작이자 설렘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2년 넘게 하늘길이 막혀 있었으니 모처럼 가는 공항은 부푼 꿈이다. 여행이 설레는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공항철도와 연결되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의 교통센터. 공항이 건네는 첫인사는 ‘집’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바람에 날려간 도로시의 집처럼 휘영청 높이 매달린 서도호의 ‘집 속의 집’. 태양을 업은 듯 밝게 빛나는 노랑과 주홍색의 집, 바다를 안은 듯 짙푸른 파란 집이 위아래로 걸렸다. 육중한 집이 가볍게, 단단한 집이 투명하게 다시 태어났다.

국제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한국 미술가 중 한 사람인 서도호는 옷 짓듯 집을 짓는다. 작품이 된 집은 작가의 서울 성북동 본가다. 그의 부친이자 동양화의 거장인 서세옥(1929~2020) 화백이 창덕궁 연경당을 본떠 만든 맞배지붕의 한옥집이다. 순조 때 대리청정을 하던 효명 세자가 궁궐 안에 사대부집 형식으로 지은 독특한 건축물인데 서 화백이 이를 옮겨 지은 셈이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서도호는 19세기의 공간과 20세기의 시간을 넘나들며 성장했다. 훗날 서울대를 졸업하고 예일대 대학원에서 유학하던 미국 생활에서 그는 한옥의 경험과 아파트 일상 사이의 낯섦과 불편함을 더듬어 ‘집’ 작업을 시작했다. 소재는 옷 만드는 천이었고 손바느질로 집을 그리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서 작가는 “집은 개인적 공간인 동시에 문화의 결정판이고 옷은 몸을 보호하는 것이되 신체에 대한 해석이자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며 “한옥은 반쯤 열린 공간인 반면 서양식 아파트는 외부와 단절된 세계 같았다. 작품 속 건축은 이 같은 동서양 간 시선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충돌의 장면이 갈등과 대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강조하고자 한 것은 ‘연착륙’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에 설치된 서도호의 2020년작 ‘집 속의 집’.


공항에 설치된 ‘집 속의 집’은 넓은 세상을 바람처럼 돌아다니더라도 뿌리가 이곳에 있음을 잊지 말라는 당부 같고 집처럼 편히 지내다 무사히 돌아오라는 기원 같다. 노란색의 큰 집은 실제 건물과 똑같은 크기이고 파란 집은 60%로 좀 작다. 아버지 서세옥의 수묵 작품 중 큰 집이 작은 집을 품게 그린 ‘어머니와 아들(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을 생각나게 한다. 공항 내 작품 안내판에는 “큰 집 속에 작은 집이 들어가 있는 형태를 통해 다음 세대로 계승 발전되는 한국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작가는 태양광이 드는 공간에 영구 설치되는 작품이라 색이 바래지 않는 실을 찾고자 애썼다고 한다. 그 결과로 평소 즐겨 쓰는 빨강과 초록 계열이 아닌 노랑과 파랑의 희소성 높은 작품이 탄생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 2층에 설치된 소수영 작가의 ‘기하학적 아트벤치’에서는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서도호의 ‘집 속의 집’을 좀 더 가까이서 감상할 수도 있다.


잠시 여유가 있다면 2층 아트벤치에 잠시 앉아보자.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경기문화재단과의 공공 미술 협력 프로젝트로 제작한 소수영 작가의 ‘기하학 아트벤치’다. 밖을 보고 앉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좋고 안쪽으로 앉으면 ‘집 속의 집’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최적지가 된다. 점선면의 조합이 딱딱할 법하지만, 자연에 근간을 둔 형태들이라 정서적 안락함을 준다. 작품 제작비는 벽산엔지니어링·벽산파워·벽산엔터프라이즈 임직원이 기부한 ‘벽산 1%나눔 매칭운동’의 기금으로 마련됐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작품에 기업 임직원의 메세나활동까지 합해져 의미가 더 커진 작업이다.

이제 떠난다. 탑승 수속과 배웅이 이뤄지는 공항터미널이다. 이곳 중앙부에 3개 층을 관통하는 미디어파사드가 설치돼 있다. 평소에는 광고가 상영되지만 3층에 놓인 빈 액자 형태의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기기에 손을 집어넣으면 화면이 바뀌며 작품이 시작된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녹색의 숲을 쓰다듬을 수도, 붉게 물든 낙엽을 이리저리 날릴 수도 있다. 하얀 비행기 한 대가 대양을 가로질러 해변에 도착하고 다시 날아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여정을 펼치는 초현실적인 영상은 독일 출신의 미디어아티스트 로만 데기울리의 ‘뷰티풀 월드(Beautiful World)’다. 작가는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막식 영상도 제작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작품을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테니 중간중간 시계를 확인해야 한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중앙홀에 3개 층 높이로 설치된 미디어타워에서 독일 작가 로만 데기울리의 ‘뷰티풀 월드’가 상영 중이다. 대양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의 여정이 초현실적으로 펼쳐진다.


출국장 면세구역에는 박선기의 ‘집합190707’이 설치돼 있다. 루이비통 매장 앞쪽이다. 표면이 매끈한 작은 금속구 수천 개를 수직 수평에 맞춰 치밀하게 배열했다. 그렇게 공간에 자리 잡은 작은 빛 덩어리들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기도 하며 인연이 오가는 공항을 장악한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구역에 설치돼 3층에서 1층까지 길게 드리운 박선기의 ‘집합190707’.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구역에 설치돼 3층에서 1층까지 길게 드리운 박선기의 ‘집합190707’. 사진 제공=인천국제공항공사


제1여객터미널도 충분히 예술적이지만 제2여객터미널은 작정하고 ‘아트포트(Art Port)’로 설계됐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3층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그레이트 모빌(Great Mobile)’은 공항의 랜드마크다. 2018년 초에 설치된 프랑스 작가 그자비에 베일랑의 작품이다. 베일랑은 2009년 현대미술가로는 제프 쿤스에 이어 두 번째로 베르사유궁전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 국가관을 대표한 거장이다. 원판부터 다면체까지 다채로운 형태의, 파랗지만 어느 하나 같은 파란색인 게 없는 18개의 구조물들이 18.5m에 달하는 높이로 설치됐다. 제2터미널 3층 4번과 5번 출입구 부근이다. 오르내리며 푸른색의 변주를 보는 게 큰 재미다. 저마다 색이 다른 5대양의 바다색이요, 낮밤으로 달라지는 6대주의 하늘색이다. 아주 미세하게 작품이 움직인다. 옛 집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봄바람에 나긋나긋 흔들리는 그 정도의 속도다. 푸른색 구조물의 잘 다듬어진 표면들이 빛과 만나 이리저리 반짝일 때마다 떠나는 이의 설렘과 기다리는 이의 반가움이 증폭된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랜드마크인 자비에 베이앙의 ‘그레이트 모빌’ /사진제공=인천국제공항공사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랜드마크인 그자비에 베일랑의 ‘그레이트 모빌’.


인천국제공항은 곳곳에서 빛의 재잘거림을 경험할 수 있다. 제2여객터미널 중앙부 천장에 설치된 강희라의 ‘헬로우(Hello)’는 한글 자·모음 1000개가 매달려 속삭이는 환영의 인사말이다. 작품은 서서히 붉은색에서 보라색을 거쳐 파랑과 초록과 노랑으로 색을 바꾸는데, 그때마다 감상자들의 표정도 달라진다. 이곳 1층 수하물수취지역 서쪽에는 독일 작가 율리어스 포프의 폭포형 미디어아트를 볼 수 있는데 실시간 뉴스피드에서 노출 빈도가 높은 단어들이 9개 언어로 무작위 표출된다. 우리는 잠시 공항에 정박해 있으나 바깥 세상에서는 시시각각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일깨운다. 포프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대형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공항을 문화 홍보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여객가치혁신처 안에 문화예술공항팀을 별도로 두고 K컬처의 플랫폼이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과 협력해 각 터미널 탑승동에 유물 대여 전시, 문화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디어월과 신규 예술품 설치를 포함해 다양한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제2여객터미널에 설치된 강희라의 ‘헬로우’. 사진 제공=인천국제공항공사


한편 제2여객터미널 안쪽에는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된 귀빈실이 있다. 국빈급 손님이 머무를 수 있는 방에는 조선 전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가 신비로운 분홍빛을 발산하며 자리 잡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의뢰해 대여했는데 공간의 성격에 이보다 더 잘 맞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귀빈실의 그림들은 대체로 한국적 정취를 강하게 드러낸다. 귀빈실 초입에 걸린 김용석의 ‘소공원 1,2’ 속의 숲 풍경은 공항 진입로의 소나무들과 닮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잦은 출입국 과정에서 이 그림과 마주칠 때마다 정겨움과 흐뭇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공항은 출발지이자 도착지다. 여행의 끝, 설렘의 마무리는 우리 집이 있는 내 땅에서 느끼는 안도감이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내 귀빈실 입구에 걸린 김용석의 ‘소공원1,2’는 공항진입로의 소나무들고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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