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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현대 어우러진 K아트의 향연, 美 심장을 수놓다 [조상인의 미담]

스미스소니언국립박물관 이건희컬렉션展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68년만에 전시

케데헌 더피 연상 '법고대'도 인기몰이

첫날 오픈런에 뮷즈 완판행진 이어져

한미 옛 외교거점 대한제국공사관선

국가무형유산 장인들 전통공예 특별전

한국문화원 '까치 호랑이' 등 민화 눈길

미국 수도 워싱턴DC 소재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전경.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국보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기증품으로 국유가 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특별전에 출품된 이 작품에 대해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소속 키스 윌슨 큐레이터는 "한국의 모나리자"라고 소개했다. 사진제공=스미스소니언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겸재 정선의 대표작이자 국보인 ‘인왕제색도’의 첫 미국행은 1957년 12월의 일이다. 6·25가 정전협정으로 멈춘 지 3년쯤 지났을 무렵, 우방 미국과의 협력으로 우리나라 국보 문화유산의 첫 국외 순회전이 추진됐다. 막 전쟁에서 벗어난 동양의 작은 나라가 독자적 문화 유산을 가진 오랜 역사의 땅임을 보여주고자 기획된 전시였다. 운송 수단도 마땅치 않았던 시절이라 ‘인왕제색도’를 포함한 금동반가사유상, 금관총 금관, 신윤복의 ‘미인도’ 등은 미국 군함에 실려 태평양을 건넜다.

국보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기증품으로 국유가 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특별전에 출품된 이 작품에 대해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소속 키스 윌슨 큐레이터는 "한국의 모나리자"라고 소개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그 ‘인왕제색도’가 다시 한번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전시 중이다. 1957년에는 내셔널갤러리였지만 이번에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이다. 군함이 아닌 전용기를 타고 왔으니 68년의 격세지감 속에 한국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주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기증품의 국외 순회 첫 전시인 ‘한국의 보물:모으고,아끼고,나누다’는 지난달 15일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개막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7건, 보물 15건 등 172건 297점이 주축을 이뤘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24점까지 더해 총 205건 330점이 전시장을 채웠다. 한국 문화를 주제로 한 미국 현지 전시로는 최대 규모다.

이건희 회장 기증품 국외 순회전 '한국의 보물:모으고,아끼고,나누다'는 한국 전통 회화인 책가도식 전시 방식으로 다양한 유물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 너머로 김환기의 점화 '산울림 19-II-73#307'도 보인다. /사진제공=스미스소니언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Photo by Colleen Dugan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으로 개막 일정이 연기됐음에도 관심은 뜨거웠다. 개막 첫날 이미 미술관 앞에 ‘오픈런’ 하려는 관람객들이 긴 줄을 이뤘고 체이스 로빈슨 관장이 직접 이들을 맞았다. 키스 윌슨 아시아미술부장은 “인왕제색도는 한국의 모나리자”라며 분위기를 달궜다.

최근 전 세계에 ‘K컬처 열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이번 전시에도 이어졌다. 불교 의식에 쓰이는 북 받침대인 ‘법고대’의 사자를 가리켜 현지 관람객들이 “더피를 닮았다”며 관심을 보였다. 수출 상품이 된 국립중앙박물관 ‘뮷즈(박물관 기념품)’는 전시 개막 1주일 만에 ‘솔드아웃’을 기록해 재주문 요청을 보내왔다.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은 “메인 출품작인 ‘인왕제색도’를 활용한 한지 조명, 도자기 출품작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청자·백자 식기류와 여러 종류의 키링을 준비했는데 수량이 모두 동났다고 들었다”면서 “초기 물량의 3배 이상의 재주문이 들어와 현장의 분위기가 좋은 듯하다”고 전했다. 누적 관람객은 전시 개막 3주 만에 관람객 1만 명을 넘겼는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세가 뚜렷하다고 한다.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북을 올리기 위한 받침대인 ‘법고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로 미국 현지인들은 이 유물을 보며 호랑이 캐릭터 ‘더피’를 떠올린다고 한다. /사진제공=스미스소니언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Photo by Colleen Dugan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 전용 전시실 ‘사유의 방’ 큐레이터로 유명한 신소연 학예연구관이 이번 전시를 담당했다. 그는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 갖는 의미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961년 이후 지속해온 해외 박물관 한국실 지원의 노력이 이번 전시를 통해 그 결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중”이라며 “미국과 영국 등 해외 박물관 중 70곳 정도에 한국실이 있는데 꾸준한 지원 덕에 한국 미술 전문 큐레이터 채용이 가능해졌고 그들이 한국 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 학예관은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전시관람 이후 생겨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국 문화를 소비하려는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예를 들면 이 같은 전시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후, 박물관·미술관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달라진 그 결과로 한국 현대미술을 소장품으로 구입하는 식으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한편 같은 시기 인접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는 한국의 또 다른 국보, 즉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장인들의 특별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Korean Hospitality)’이 열렸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역사는 기구했다. 자강외교를 모색하던 고종은 1882년 서양 국가 최초로 미국과 외교 협정을 맺은 후 1887년 박정양을 초대 주미 공사로 임명해 미국으로 보낸다. 박정양과 공사관원 일행이 백악관을 방문한 후 외교 거점으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마련했다.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와 함께 일제는 강제로 공사관을 매각하게 했다. 이후 100여 년 만인 2012년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매입했고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의해 옛 모습을 되찾았다. 지난해에는 미국 정부도 역사성 높이 평가해 이곳을 국립사적지로 공식 등재했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지난달 열린 국가무형유산 장인들의 특별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 전경. /사진제공=강임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장


“찰랑찰랑~”

공사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울리는 맑은 종소리는 환대의 인사다. 처마 밑에 거는 풍경은 그 소리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였다. 쇠를 녹여 각종 기물을 만드는 국가무형유산 ‘주철장’ 이수자 원천수의 ‘청동풍경’이다. 한쪽에는 ‘희(喜)자문렴’이 걸렸다. ‘염장’은 발을 만드는 장인인데 대나무 발에 쌍희자를 새겨 기쁨과 복을 두 배로 담았다. 염장 전승교육사 조숙미의 작품이다. 계단을 오르면 아름다운 매듭 장식 아래 등불이 달려 손님의 앞길을 밝혀준다. ‘매듭장’ 전승교육사 박선경의 작품이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지난달 열린 국가무형유산 장인들의 특별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 전경. /사진제공=강임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장




접견 공간인 ‘객당(客堂)’은 더없이 화려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예술감독 원보현 WBH랩 대표는 “대한제국은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문화적 자부심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고 고종과 공사관원들은 전통 공예품으로 외교의 품격을 챙겼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시를 구상했다”면서 “우리 공예가 서양의 화려한 벽지, 벨벳 사이에서도 돋보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전통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보유자 김동식은 왕실에서 사용하던 360도 원형의 ‘합죽 윤선’을 내놓았다. 오얏꽃으로 장식된 은제 다기와 담뱃대, 은제함은 대한제국 왕실 문화의 우아함을 보여줬는데 ‘조각장’ 보유자 곽홍찬의 작품이다. 차를 내놓는 다구와 도시락 함은 ‘칠장’ 보유자 정수화가 만들었다. 이곳이 문화 교류와 풍류의 장이었다는 상상으로 ‘악기장’ 보유자 고흥곤, 이수자 고승준은 해금과 양금을 각각 제작했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지난달 열린 국가무형유산 장인들의 특별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 전경. /사진제공=강임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장


공사관의 핵심 공간은 ‘정당’인데 불로 달군 인두로 지져 그림을 그리는 ‘낙화장’ 보유자 김영조가 고종 어진을 그렸다. 식탁에 놓인 유기 상차림 세트는 서양의 커트러리와는 비교도 안될 정갈한 화려함을 자랑했다. ‘유기장’ 보유자 이형근과 이수자 이지호가 만들었다. 식탁의 따뜻한 분위기를 완성시킨 은은한 금빛의 ‘금박 발’은 얇은 금박을 이용해 문양을 찍어내는 ‘금박장’ 이수자 박수영의 작품이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지난달 열린 국가무형유산 장인들의 특별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 전경. /사진제공=강임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장


당시 공사관원의 의복도 복원했다. 자주색 비단에 흰 학이 수놓인 흉배가 붙은 조복, 공사 부부의 한복은 바느질 장인인 ‘침선장’ 구혜자가 맡았다. ‘케데헌’ 열품으로 갓과 한복에 대한 인기가 높아진 까닭에 가장 주목받는 출품작 중 하나가 됐다. 공사 부부의 침실에 놓인 향로와 컵에는 금속 표면에 홈을 파 금선(金線)이나 은선(銀線)을 넣는 장식 기법인 ‘입사장’이 쓰였다. 입사장 전수교육사 승경란의 정성이다. 공사 부부가 실제 아기를 낳아 길렀다는 기록을 토대로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가 아이용 ‘까치 두루마기’를, 전수장학생 김진호가 금박 보석함과 액자를 만들었다. 이들은 조선 철종 때부터 이어 내려온 금박장 가문 출신이다. 호신용 작은 칼을 만드는 ‘장도장’ 이수자 박남중의 은장 펜 장도, 입사장의 문진과 필통·인주합 등은 선비의 멋을 한껏 뽐냈다.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은제 젓가락을 호신용 칼에 함께 부착한 ‘장도장’ 이수자 박건영의 ‘첨자도’도 주목 받았다. 23명의 작가와 146점의 전통 공예품이 전시됐으니 호젓하던 공사관이 관람객으로 들썩였다는 게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사무소장의 전언이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특별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에 선보인 입사장 승경란, 장도장 박남중의 펜칼과 첨자도. /사진제공=제작소프로젝트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열린 특별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에 선보인 주철장 이수자 원천수 '십이지신 탁상종' /사진제공=제작소프로젝트


전시가 개막한 후 지난달 15일에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한국 전통 공예의 ASMR’을 주제로 아티스트 토크, 17일에는 뉴욕주립패션공과대(FIT)에서 학생 대상 시연 및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원 예술감독은 “국가무형유산으로서 기술을 보유한 장인들의 제작 과정을 촬영한 ASMR 영상을 상영했는데 현지 관람객들이 숨죽인 채 집중했고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며 관심을 보였다”면서 “전통 기술을 계승한 장인들은 재료 준비에서부터 숱한 시간과 공을 들인다. 기술을 보유한 사람도 보물이요, 그 결과물인 작품들 또한 우리 시대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침선장 구혜자의 의복, 소목장 전승교육사 조화신의 책장과 서랍장, 금박장 이수자 박수영의 금박 발, 주철장 이수자 원천수의 십이지신 종 등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2층 공사집무실에 전시됐다. /사진제공=제작소프로젝트


과거의 유산이 현재를 만들었다.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불붙은 한류 열풍이 그 저력이 어디서 왔는지를 더듬으며 ‘K컬처’ 열풍으로 이어졌다. K공예의 치밀함에서 K팝 아이돌의 칼군무를 떠올리고, 백자 달항아리에서 K아트의 함축된 정서와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되짚으며 민화의 기발한 미감이 K시네마·K드라마의 저력이 됐음을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알아가는 중이다. 물들어 왔을 때 노 젓고, 불붙었을 때 장작 넣어줘야 한다. 우리 문화유산의 다양한 해외 전시를 위한 정책적 지원을 바라본다.

주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지난달 개막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품 특별전 '서울의 멋:민화' 전시 전경 /사진제공=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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