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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학생에 19세기 교육하면 미래 없어…대학이 교육 혁신 허브 돼야” [청론직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현 KDI 교수)

평준화→다양화→개별화로 ‘교육 지각 변동 시대’ 맞아

대량생산 교육방식 깨고 파괴적 혁신으로 새 모델 모색

韓·日 교육부가 대학 규제, 美는 AI튜터 등 맞춤형 교육

‘과학기술혁신전략부’ 신설해 대학 개혁 포괄 지원해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4일 서울 강남의 아시아교육협회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학생들을 실패자로 만드는 낡은 교육 모델을 폐기하고 학생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 모두를 성공시키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 조직 개편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교육부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4차 산업혁명 파고 속에서 ‘창의 인재 육성’이라는 과업이 주어졌지만 관료주의적 행정에 얽매여 외려 교육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지난해 말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정부 조직 디자인’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부는 정부 조직 중 개편 필요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진단을 받았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을 정도다.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4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21세기에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19세기 교육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과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화된 수업에 몰아넣는 대량생산 방식을 깨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 교육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교육부가 대학 재정을 틀어쥐고 통제하는 현행 대학 평가와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지 않으면 교육의 미래는 없다”며 “대학이 교육 혁신의 허브가 돼야 한다는 대전제하에 정부 구조를 원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K정책플랫폼’은 최근 “대학을 교육부 산하에서 떼어내 총리실 산하로 편제하고 산업경제·과학기술 정책을 융합한 ‘과학기술혁신전략부(가칭)’가 대학 혁신을 포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개혁안을 제시했다.

-한국 교육에 미래가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정보기술(IT) 혁명이 일어난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술은 물론 삶의 방식, 마인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량 등 모든 면에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교육만 예전 방식을 고수하면서 시대 변화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데다 현행 교육 체계를 마련한 당사자이므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텐데.

△그렇다. 그래서 30년째 교육을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직접 국회에서 입법을 했고 청와대에서 정책 디자인을 했으며, 장·차관으로 일하며 직접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입학사정관제·마이스터고·자율형사립고 등 현행 교육 체계의 상당 부분을 당시에 만들었다. 지금 평가해보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정책 목적은 좋았지만 뿌리내리지 못한 것도 있었고, 부작용을 낳으며 외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도 있다.

-교육부 전면 개편을 주장하는 이유는.

△교육부가 잘못했다기보다는 교육이 ‘지각변동 시대’를 맞이한 만큼 이에 맞춰 정부 조직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융합, 코로나19 팬데믹 등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교육부가 있다. 교육 지각변동의 핵심은 100년도 더 된 낡은 교육 모델을 새로운 모델로 바꾸는 혁명적 변화다. 더 이상 19세기 교육으로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현행 교육 모델의 문제점은.

△낡은 교육 모델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잠재력과 수요를 무시하고 획일화된 수업에 몰아넣는 대량생산의 공장형 방식이었다. 상위 교육기관으로 올라갈 때마다 아이들을 솎아내는 선별 중심의 교육이기도 했다. 그 종착역이 대학 입시 제도다. 많은 학생을 실패자로 만드는 낡은 교육 모델을 폐기하고 학생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 모두를 성공시키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내놓아야 한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은 뭔가.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능력이 아닌 지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역량이 필요한 시대다. 핵심 개념의 이해 중심으로 지식 기반을 튼튼히 하고 그 토대 위에서 데이터·공학·인문학을 포괄하는 고차원적 인지능력을 키우며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소통 역량 등을 길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교육의 ‘파괴적 혁신’이 이뤄져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 먼저 교육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상징적인 사건은 2012년 뉴욕타임스가 ‘무크(MOOC)의 해’로 규정했던 교육 혁신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미국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명강의를 누구나 무료로 온라인 수강할 수 있었다. 이후 일방적 온라인 강의의 한계점이 드러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공지능(AI) 튜터 등 에듀테크 붐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나라 밖에서는 개별 학생들의 수준과 적성에 맞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4일 서울 강남의 아시아교육협회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교육부가 대학의 재정을 틀어쥐고 통제하는 현행 대학 평가와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지 않으면 대학의 미래는 물론 교육의 미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혁신에 성공한 대학 사례를 소개한다면.

△6년째 미국 혁신 대학 1위에 선정된 애리조나주립대(ASU)를 꼽을 수 있다. 에듀테크 기업들과 협업해 150가지가 넘는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개발했고 이를 활용해 학생 개개인의 학력 수준과 학습 속도에 맞춘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19개 주지사가 설립한 비영리 온라인 대학인 웨스턴거버너스대학(Western Governors University)의 경우 산업계와의 협업을 통해 학위 취득과 업무 스킬 교육, 더 나아가 직장 추천 서비스 등을 진행하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새 정부에 제안한 교육 개혁의 핵심 내용은.

△교육부의 고등교육정책실을 폐지하고 대학을 총리실로 편제하자는 게 골자다. 영유아 교육과 보육은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하는 만큼 가족 기능과 합쳐 ‘교육가족부(가칭)’로 가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대학의 연구·혁신·평생교육에 대한 지원을 과학기술 정책과 융합하는 동시에 대학을 포함한 혁신 생태계 조성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과학기술혁신전략부(가칭)’와 같은 별도 부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대학에 대한 규제를 최소한만 남기고 대학 입시를 포함한 중장기 교육정책은 7월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로 넘기면 된다. 다만 국가교육위에 참여할 위원 21명을 교육학자 중심으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대한민국의 인재상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입시와 교육 시스템을 원점에서 설계해야 한다.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다면.

△영국은 2009년 혁신과 산업, 대학 지원, 규제 개혁 부서를 통합해 기업혁신기술부(BIS)를 설치했다. BIS 성공 사례는 연구개발 기능, 대학 지원 및 인력 양성 기능, 창업 및 기업 지원 기능을 한 부처에 모아 혁신 정책의 통합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고 효율성을 높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거대 부처에 대한 우려보다는 혁신 통합 부처의 이점이 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굳이 교육부에서 대학을 떼내야 하는 이유는.

△대학이 교육 혁신의 허브가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교육부 산하 기관처럼 운영되고 있다. 고등교육법은 교육부 장관이 대학에 대한 포괄적인 지도·감독 권한을 갖고 있으며 교육부는 대학의 주요 학사 운영에 대해 인가하게 돼 있다. 또 사립학교법은 사립 대학의 재산 처분까지도 교육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 대학을 이렇게까지 규제하는 나라는 일본 정도가 있을 뿐이다. 기업도 경영하는 과정에서 일일이 산업통상자원부의 허가를 받지 않는데 유독 대학만 그렇게 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대학교수들이 정부 관료처럼 일하고 혁신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교육부가 재정을 쥐고 대학을 통제하는 한 대학의 미래는 없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에서 대학을 떼내 총리실 산하로 보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학이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게 된 이유는 뭔가.

△교육부가 지난 14년 동안 대학 등록금을 거의 동결 수준으로 통제하는 동시에 정성 평가와 연계한 재정 지원 사업을 확대하면서 대학이 교육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게 되고 교육부의 통제를 더 받게 됐다. 대학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한 보고서 작성과 평가 준비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지역사회 혹은 기업과 협력해 혁신 생태계로 나아갈 여유조차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학 등록금에 대한 제한적 자율을 허용하는 대신 학생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국가 장학금을 늘려야 한다. 교육부의 대학 단위 지원은 과감하게 축소하는 대신 학생과 교수가 혁신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을 늘려야 한다. 단순히 업무를 다른 부처로 이관하는 게 아니라 규제 철폐를 통해 대학의 혁신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해결하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방대 및 전문대 소멸 문제 해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 개혁 방향을 제시한다면.

△교육은 평준화에서 다양화로 왔고 이제는 다양화에서 개별화로 가야 하는 시대다.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에게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한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하이테크 기술을 활용해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인성을 키우는 ‘하이 터치, 하이 테크(High Touch, High Tech)’의 시대로 가야 한다.

He is…

1961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코넬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근무했다. 제17대 국회의원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장관을 지냈다. 2015년부터 유엔 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 ‘K정책플랫폼’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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