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력 산업을 이끄는 대기업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조세 지원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줘도 투자 유인 효과가 없다는 이념이 개입된 논리를 앞세워 세제 혜택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여기다 여당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선거에서 지자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상위 2% 종합부동산세 부과 세법을 만들려고 한다.
조세원칙이 정치 논리에 흔들리며 과세 결정에 불복하는 사례만 늘렸다. 17일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연도별 조세심판 청구 건수는 2016년 6,003건에서 지난해 1만 2,282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하루 평균 36건씩 과세 불만으로 심판을 청구했고, 올 들어서는 1분기에만 4,391건에 달했다. 이 중 종부세·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세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도 더불어민주당은 18일 정책 의총에서 조세법정주의에 어긋나는 종부세 상위 2%안의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징벌적 과세의 부작용으로 집값이 급등했고 공시가격 상승과 세율 인상까지 더해져 조세 저항이 커졌는데도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 속에서 또다시 난도질만 하는 식이다. 포퓰리즘 과세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기업 조세정책도 정치 논리에 휘둘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47개 국가 중 대기업에 대한 R&D 세제 지원이 지난 2018년 27위(0.03)에서 2020년 37위(0.02)로 하락했다. 지수가 0.02라면 100만큼 R&D 투자를 했을 때 2만큼 조세 지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프랑스(0.41)는 우리보다 20배나 지원이 많았고 영국(0.12), 일본(0.17), 미국(0.07) 등 주요 국가들도 더 컸다.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율을 최고 25%(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로 올리고 R&D 설비 투자 공제율을 축소하면서 요건마저 엄격하게 만들어 민간 R&D를 위축시켰다. 정부가 올해부터 9개 특정 시설의 투자 세액 공제를 통합하고 최근 반도체 패권 전쟁으로 발등에 불이 붙으면서 핵심 전략 기술 지원을 신설하기로 했지만 바이오·배터리·미래차 등 미래 성장동력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세금을 능력에 맞게 부과한다는 ‘응능과세원칙’을 왜곡해 이상한 핀셋 증세만 해왔다”며 “다음 달 정부가 발표할 세법 개정안에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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