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전기차 전환 물결이 거센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의 탈(脫)내연기관 시계가 빨라졌다. 수요가 급감한 엔진을 단산하고 생산 물량을 해외로 이전하는 등 국내 파워트레인(엔진 및 변속기)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 파워트레인 담당 연구원들도 전기차 개발 인력으로 전환시키는 등 사실상 내연기관 엔진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브라질 상파울루주(州) 피라시카바에 700억여 원을 투자해 엔진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현대차는 울산에서 생산해 현지조립형생산(CKD) 형태로 수출하던 ‘카파’ 엔진 물량 일부를 브라질 공장으로 넘길 방침이다. 카파는 아반떼·모닝 등 경차에 장착되는 엔진이다. 연간 생산 규모는 6~7만 대로 울산 공장에서 생산하던 물량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완공 시점은 내년이다. 피라시카바시는 지난해 10월 현대차 엔진 공장 설립 허가를 내줬다.
현대차 파워트레인 부문의 한 관계자는 “회사가 노조에 이 같은 계획을 공식적으로 알렸고 물량 이전과 관련한 고용안정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브라질에 엔진 생산 기지를 짓는 것은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점도 있지만 국내에서 과감히 전기차에 진력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내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전기차 전환 청사진을 앞세워 과감한 인력 구조 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파워트레인 부문은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자리를 내주는 추세다. 현대차가 지난 2008년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8기통 가솔린 엔진 타우를 단종시키려는 것이 대표적이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동남아·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 수요를 고려해 내연기관 역량을 당분간 이어간다는 방침이었지만 예상보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열리면서 전환 시점을 앞당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이와 함께 올해 1분기 연구개발(R&D) 본산인 남양연구소에서 노사 합의로 파워트레인 담당 연구원을 전동화 분야 연구로 전환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합의 사항에는 파워트레인 연구원의 전동화 전환 준비 및 업무 탐색 기회 부여, 엔진개발센터의 경력 개발 방안 등이 담겼다. 자동차 개발의 핵심인 파워트레인 연구 인력을 대폭 없애고 이 인력을 전기차 개발 인력으로 재교육하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전기차 투자 확대를 위해 가솔린·디젤 등 내연기관차 모델 절반을 단종시킬 방침이다. 로이터통신은 현대차그룹 내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최고경영진이 3월 이 같은 전략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R&D 역량을 전기차와 배터리, 수소 연료 전지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오는 2040년까지 완전 전동화를 목표로 미국과 유럽·중국과 같은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모델을 점진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연간 10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점유율 10%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의 신차를 12종 이상 선보일 예정이다.
다만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노조와의 갈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현대차 울산 노조는 전기차로의 전환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파워트레인 공장을 축소하는 대신 신사업인 도심항공교통(UAM), 전기차 배터리 모듈 공장 등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 한동희 기자 d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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