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발행량이 우후죽순처럼 급증해 예산 투입도 이에 비례해 늘어나자 효용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기존 소비를 대체할 뿐 소비 촉진 효과는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여유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할인율을 15%까지 높이거나 5만 원 추가 지원금을 지급해 지역별 재정 사정에 따라 혜택을 보는 편차만 확대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한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4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중앙정부의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은 지난해 6,900억 원에서 올해 1조 500억 원으로 확대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최근 3년간 발행 규모가 급증했음에도 사업 효과성 검증이 미흡해 쟁점이 되고 있으므로 면밀한 성과 분석에 근거한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본래 목적과 의의를 고려해 국가 재정 투입의 적정 규모와 기간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경고다.
통상 10%인 지역화폐 할인 금액은 사실상의 소비 보조금과 같다. 50만 원을 쓰면 5만 원을 돌려받는 효과가 있어 지역 상권에 도움은 된다. 하지만 투입 비용 대비 승수효과가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상반기 33개 업종에서 1조 3,000억 원이 카드형 지역화폐로 결제됐는데 절반 정도가 음식점과 슈퍼마켓에서 사용됐고 숙박·여행업 소비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국고 지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담았다.
또 강창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역별 취업자 수 추이를 지역화폐 발행 전후로 비교한 결과 지역화폐 발행이 고용을 유발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상공인을 지원하려면 가격을 깎아 직접 지원을 하면 되는데, 간접 지원 형태여서 행정 비용이 많이 들고 비효율성이 발생한다”며 “기존 결제 방식을 대체하기 때문에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재정 상황에 따른 양극화도 나타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해 희망자의 절반가량이 지역화폐인 ‘여민전’을 사용할 수 없는 세종시를 비롯해 1인당 사용 한도를 점차 축소하는 지역이 속출하는 반면 경기도는 이달부터 예산 소진 시까지 20만 원만 충전하면 추가로 5만 원을 더 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대전시는 자체 재원을 활용해 지난달 ‘온통대전’ 할인율을 15%로 높이기도 했다.
통상 10% 할인율 가운데 중앙정부가 지역에 따라 8% 또는 6%를 국고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지자체 곳간 사정에 따라 판매액도 차이가 크다. 재정이 여유가 있는 경기도는 국비 지원과 자체 발행을 합한 지난해 판매액이 2조 5,100억 원에 달한 반면 울산광역시는 거의 국비에만 의존해 3,153억 원에 그쳤다. 익명의 한 전문가는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있는 지자체가 더 많은 국비 지원을 받는 구조는 문제가 있어 지역별 여건에 맞게 지원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가 43.58%로 매년 떨어지는 추세인데다 최근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어 취득세 등 지역 세수도 위축될 것으로 보여 자칫 예산에만 기대서는 지역화폐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는 지자체 신청만큼 다 지원할 수 없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2차 추경을 통해 지역화폐의 발행 한도와 할인율을 더욱 확대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당 내 유력 대권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주장처럼 2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일 “3개월 (안에 사용해야 하는) 지역화폐 형식으로 지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있다”며 “그런 성격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차기 대권 경쟁에서 이 지사 측을 견제하는 의원들은 일률적으로 지역화폐로 주면 사용처가 제한돼 소비 진작에 한계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할인깡’ 등 부정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많이 있어 국가 재정이 많이 들어가는 데 비해 부작용이 크다”며 “유동성도 굉장히 늘리게 돼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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