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검찰개혁 2단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국의 경우 검찰이 수사·기소권을 모두 가진 사례가 없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검찰 권한의 두 축인 수사와 기소 중 기소만 하도록 하는 내용의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설치법안을 대표 발의한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다른 나라에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법안에 따르면 중수청은 현재 검찰이 담당하는 6개 중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상정돼 있다.
황 의원은 23일 중수청 설치법 공청회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문명국가 어디에서도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전면적으로 행사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관련 기사 댓글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미국, 독일, 일본 검찰 모두 수사권을 가지는데 무슨 소리냐", "외국에서도 검찰이 수사한다. 수사를 못 하는 검찰에 존재 이유가 있느냐"와 같이 황 의원의 발언에 대한 반박이 나왔다. 그렇다면 황 의원의 발언대로 검찰이 실제 모든 범죄의 수사를 직접하는 식으로 수사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드물지만 없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우선 여러 주요국에는 헌법이나 법률에 검찰의 수사권이 규정돼 있다. 신태훈 창원지방검찰청 마산지청 부장검사(당시 서울동부지검 검사)가 지난 2017년 펴낸 '이른바 수사·기소 분리론에 대한 비교법적 분석과 비판' 논문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현 37개국) 회원국 중 약 80%에 해당하는 28개국은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으로 검사의 사법경찰에 대한 구속력 있는 수사지휘권을 규정하고 있고, 약 77%에 해당하는 27개국은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으로 검사의 수사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나와 있다.
멕시코의 경우 형사소송법 제127조에 "(검찰이) 수사를 행하고, 수사 과정에서 경찰과 전문가 업무를 조율한다"고 명시했다. 실제 이민자 살해 사건, 대학생 수십 명 실종 사건 등 한국 같으면 경찰이 했을 법한 강력사건 수사를 검찰이 한 것으로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이 밖에 이탈리아, 터키, 폴란드, 헝가리도 검찰이 수사권을 적극 행사한다는 사실이 각국 수사제도 보고서와 외신 보도 등에 나타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계기로 올해부터 6대 범죄만 직접 수사하게 돼 있는 현재의 한국 검찰처럼 기소권과는 별도로, 일정한 범위의 범죄에 대해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나라들도 몇몇 있다.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김대원 교수)이 대검찰청 연구 의뢰를 받아 2018년 발간한 보고서 '각국 경찰의 강제수사제도 및 이에 대한 통제방안 분석 및 시사점-OECD 35개국을 중심으로(이하 '각국 수사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을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스웨덴은 법절차법에 의해 경미한 범죄는 경찰이 수사를 담당하지만, 2년 이상의 징역형이 예상되는 중범죄인 경우 검사가 직접 수사한다. 실제로 스웨덴 검찰은 홈페이지에 △살인 같은 중대 범죄 △가까운 친척을 대상으로 이뤄진 범죄 △용의자가 구속된 경우 △피해자가 18세 미만인 경우 등에서 검사가 수사를 담당한다고 안내한다.
일본과 미국도 검찰이 기소권을 가진 동시에 직접 수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 검찰은 정치인, 대기업 등이 연루된 이른바 '특수(특별수사) 사건'이나, 고도의 법률 지식이 필요한 사건 등을 직접 수사한다. 지난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유권자 상대 향응 제공 의혹을 도쿄지검이 직접 수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주(州)마다 차이가 있지만, 지방 검찰청이 직접 수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뉴욕시 맨해튼 지방검찰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비위 의혹을 수사 중이다.
반면, 중수청 설치법이 지향하는 바와 같이 검찰이 직접 수사는 하지 않고 기소권만 행사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경찰이 기소권까지 부분적으로 행사하는 나라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을 비롯해 영연방 전통을 따르는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이들 국가는 수사가 사법 경찰의 고유 영역이다.
영국에서는 경찰이 수사권과 기소 이전 단계에서 독자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권한을 보유하며, 기소권은 검찰에 있다. 1937년 영연방을 탈퇴했지만 법·제도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 아일랜드에서는 경찰(Garda Siochana)이 수사는 물론 경미한 범죄에 대한 기소 권한도 가지고 있다. 검찰 역할은 기소국 사무소(DPP·The office of the Director of Public Prosecutions)가 하는데, 수사권 없이 중대범죄에 대한 기소 권한만 가지고 있다. 다만 수사와 관련해 경찰에 일반적인 제언을 할 수 있고, 경찰이 요청할 경우 구체적인 지침도 제공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도 경찰이 수사 뿐 아니라 기소권도 가지고 있다. 검찰은 주로 공소유지를 담당하는데, 제한적으로 기소 권한도 행사한다. 이와 유사하게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도 경찰이 수사권한과 대부분의 사건에 대한 기소권을 행사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중범죄·조직범죄 등에 대해 각각 왕립법률청(Crown Law Office)와 연방검찰(CDPP)이 기소권을 갖는다.
영연방 이외 국가 중에서는 이스라엘의 경우 경찰이 전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며 검찰로부터 수사 지휘를 받지도 않는다. 기소권은 경범죄인 경우 경찰 소속 경찰소추관에, 중범죄인 경우 검찰에게 주어진다. 이 밖의 OECD 국가 중에는 검찰이 수사권을 갖되 주로 수사를 지휘하고 실무는 경찰이 하는 나라들이 다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박예나 인턴기자 ye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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