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 행사와 관련해 매수인의 실거주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거듭되자 정부가 주택 거래 시 청구권 행사 여부를 기재토록 제도 개선에 나섰다. 이른바 시장에서 불리는 ‘홍남기 방지법’이다. 하지만 실제로 나온 내용을 보면 시장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단순 ‘행사 가능 여부’만 체크하도록 하는 내용이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3일 주택 매매 계약 시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입법예고 했다. 정부는 입법예고를 통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명시해 주택 매매 계약 시 혼란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입법예고된 개정 내용은 정작 제기된 부작용을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청구권을 ‘행사했는지, 아닌지’ 정도만 확인하도록 했는데 이는 거래 상대방인 매도자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입법예고 안에서 공개한 개정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보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와 관련해 ‘행사 완료’ 혹은 ‘미행사’ 여부만 체크하도록 돼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임대차 기간과 계약갱신 시 임대차 기간을 기입하도록 하는 정도다. 세입자가 실제로 청구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국토부는 공인중개사에 대한 작성방법 설명 자료를 통해 “‘행사 가능’은 기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청구를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며 “임차인과 매도인에게 확인한 결과 청구권 행사를 완료한 것으로 확인된 경우에는 ‘행사 완료’에 체크 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정부 개정 규칙이 임차인의 ‘청구권 행사 의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실제로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만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매도인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애초에 계약 과정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시장에서는 곧장 ‘얼치기 제도’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한 집주인은 “세입자의 변심으로 거래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행사 여부를 미리 확인하도록 하자는 게 시장의 요구”라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을 내놓고 생색만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인중개사들 또한 “청구권 행사 여부는 거래 당사자들의 문제인데 왜 공인중개사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애초에 세입자의 마음에 달린 청구권 행사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행사 가능 여부’가 아닌 세입자의 행사 의지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고 해도, 세입자 입장에서는 설령 청구권을 행사할 마음이 없어도 무조건 ‘행사하겠다’고 답하는 게 이익인데다 법적으로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임대차법에서는 심지어 세입자가 청구권을 사용했다고 해도 계약 기간 전에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임차인 위주로 설계된 제도를 보완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아무리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고 해도 ‘내 집’에 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매수자가 실거주 의사를 밝힌 경우라면 퇴거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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