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임대차 분쟁이 끝 모르게 나오고 있다.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 7월 31일 임대차 3법이 시행된 후 이달 18일까지 공단에 접수된 임대차 관련 상담 문의는 1만 4,830건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8,614건이었던 데 비해 72.2%나 늘어난 수치다.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 따르면 7월 말부터 8월 31일까지 임대차 상담이 5,090건으로 전년 동기간(1,539건) 대비 3.3배 늘었다.
현장에서는 임대인의 경우 세입자를 달래기 위해 위로금 등 뒷돈을 주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가고 있다. 일부 세입자는 위로금 요구를 직접 하기도 한다. 일부 집주인은 ‘방 빼라’며 맞서고 있다. 세입자도 하소연이다. 주변 전세가가 크게 뛰었고, 매물마저 사라지면서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가능한 일부 세입자만 혜택을 입을 뿐 대다수 임대인과 세입자 모두 피해자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원인에 대해 설익은 정책 탓이라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예전 같으면 발생하지 않을 분쟁이 계속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며 “주거 안정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의 신뢰는 다시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세금 10%에 복비·이사비 안주면 집 못 빼요”>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실거주 매수자의 ‘실거주 불가’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가운데, 버티는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한 ‘뒷돈’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법 해석이 세입자 입장에 치우친 탓에 청구권 사용을 두고 말을 바꾸는 세입자가 생겨도 매수인 입장에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래 계획대로 이사를 갈 예정이었던 세입자들도 이사비 명목으로 지원금을 요구하는 등 뒷돈이 관행화 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실제로 부동산 카페 등에는 ‘세입자 내보내기’에 비상이 걸린 실거주 매수인들의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연이어 불거지고 있다. 합의금 명목의 금전적 보상을 제공했더라도 세입자가 ‘법을 잘 몰랐다’거나 ‘집이 구해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전세금 10%’ 선지급은 기본적인 수준이다. 세입자가 집을 보러 다니다가 맘에 드는 집을 발견할 경우 전셋값의 10% 수준을 계약금 조로 지급해야 하니 나중에 받을 전세금의 일부를 미리 받아야 한다는 이유다. 매수인 사정으로 이사를 한다는 이유로 새로 구하는 전셋집 복비도 요구하는 식이다.
여기에 이사비용까지 요구하는 세입자들도 있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돈이 없어 계약이 깨졌다’고 하면 되레 난처한 사정이 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집주인은 “당연한 듯 뒷돈 요구를 하는 걸 보면 관행처럼 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집주인은 위로금 요구를 거부하며 법대로 하자고 맞서기도 하고 있다.
<기존 집주인과 새 집주인 갈등까지…세입자도 피해자>
정부도 사실상 손을 놓아버린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가능한’ 세입자가 낀 거래에서는 매도인·매수인 모두 살얼음판을 걷는 모습이다. 세입자 변심에 따른 계약 파기로 매매 당사자들이 배액 배상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는 등 예전에는 없던 분쟁들마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부동산 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세입자의 말 바꾸기에 따른 부동산 매매계약 파기와 관련한 다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현행법상 계약이 일방의 책임에 의해 파기되면 당사자가 그때까지 오고 간 금액의 두 배를 배상해야 한다. 문제는 세입자가 약속을 했다가 말을 번복한 경우다. 매도인이나 매수인 모두 ‘피해자’인 셈이어서 누구 탓에 계약이 깨졌다고 주장하기가 모호하다. 매수인의 경우 계약 해지의 책임이 매도인에게 있는 만큼 배액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매도인은 세입자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배상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등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갈등이다 보니 법조계조차 배액 배상 책임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별도 특약이 없는 한 매도인이 정상적으로 인도하지 못하면 (매도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정인국 법무법인 한서 변호사는 “세입자가 청구권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매수인이 알고 있었다면 배상 책임이 오히려 매수인에게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세입자도 결국 피해자다. 방을 빼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세가는 계속 오르지만 매물은 없는 상황에서 세입자 입장에서는 버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셈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64주째 오르며 쉼 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아울러 서울 외곽 노후 단지도 전세가가 5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서울에서 전세 5억 이하 아파트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진동영·양지윤기자 j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