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파탄에 빠진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에 대한 단호한 공조 대응을 꾀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다시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휘둘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만 독자적 대북지원에 나서더라도 장기적인 경제난을 겪는 북한이 만족할 리도, 태도를 바꿀 리도 없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19일 대다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미국에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하더라도 이를 들어줄 공산은 작다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을 상대로 이 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라는 소식에 의문을 표했다. 나아가 금강산 개별관광 재개, 평양종합병원 지원 등 한국이 독자적으로 도움을 주더라도 북한이 원하는 수준에는 한참 모자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가 독자지원을 하더라도 국제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할 수밖에 없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결코 북한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며 “가령 금강산 개별관광을 재개한다고 한들 지금 같은 경제상황과 남북 분위기 속에서 몇 명의 국민들이 갈 것이며 그게 북한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현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한 모든 노력은 실패했고 우리가 주도해 북미대화를 이끌고 제재를 해제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며 “국제제재 아래에서 북한에 뭐라도 적극적으로 해야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핵을 보유한 북한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이 같은 소식에 대해 “협의 내용은 물론 일정도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만 전했다. 통일부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기능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며 이를 고려해 남측 연락사무소 관련 인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날 공식 퇴임한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이임사에서 “증오로는 증오를 결코 이길 수 없다”며 남한까지 대결 양상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편 북한에 유화적인 전략을 여전히 견지하는 듯한 우리 정부와 달리 미국은 군사적 경계를 크게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데이비드 헬비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안보차관보 대행은 18일(현지시간) 전화 간담회에서 한미 연합훈련 재개, 전략자산 전개 문제와 관련한 효과적 연합방위능력 보장을 위해 한국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목표는 단지 국방부의 목표가 아니라 미국 정부의 목표이자 인도태평양 지역, 그 너머 많은 나라가 공유하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도 현재 정경두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간 화상회의 날짜를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한미일이 3자 협의로 대북정책을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 문제에 대해 한미 당국이 각각 대응방안 구상에 돌입함에 따라 북한 역시 이틀째 고위급 성명을 멈추고 동향을 살피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다만 일각에서는 보복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다수 정부 기관들이 쉬고 탈북자단체가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한 이번주 말에 또 다른 행동에 나설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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