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한 ‘조선왕조실록’은 우리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간의 방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에는 선조들의 생각과 지혜가 담겨 있다.
‘태종실록’에는 다음의 대목이 기록돼 있다. ‘재주와 덕성을 완전하게 갖추면 성인(聖人)이라 이르고, 재주와 덕성이 모두 없으면 우인(愚人)이라 이르며, 덕이 재주보다 나으면 군자(君子), 재주가 덕보다 나으면 소인(小人)이라 이릅니다. 무릇 사람을 취함에 있어 소인을 얻는 것보다 우인을 얻는 것이 낫다는 것은, 소인이 재주를 끼고 나쁜 짓을 할까 깊이 염려하는 까닭입니다.’
태종 4년 8월 사간원에서 올린 상소 내용이다. 유능하지만 도덕성이 결여된 공직자로 인한 폐해를 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직자에게는 뛰어난 재주만큼이나 그 재주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현시키는 윤리적 자질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꿰뚫어본 것이다.
60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2014년 공직사회 혁신의 사명으로 출범한 인사혁신처의 지난 5년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전심전력한 시간이었다. 출범 5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많은 국민이 그간의 공직윤리 개선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바라는 공직자 상(像)으로 ‘청렴하고 투명·공정한 공직자’를 1순위로 꼽았다. 전문성이나 서비스 정신 등 요즘 시대에 필요한 공직자 자질 중에서도 국민들은 청렴과 공직윤리를 여전히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공직자의 공·사익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1983년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된 후 저축은행 사태, 세월호 사건 등을 계기로 공직자 재산등록 및 취업심사 대상을 지속 확대해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재산등록 의무자는 23만명에 이른다. 어림잡아 공무원 5명 중 1명은 재산등록을 하고 퇴직 이후 재취업 시 제한을 받는다는 의미다.
지난가을 국회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은 한층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고위 공직자는 보유재산의 취득경위와 자금출처 등 재산 형성과정을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민관유착 우려가 높은 국민안전·방산·사학 분야에 재취업하려는 퇴직 공직자는 업체 규모와 관계없이 모두 엄정한 취업심사를 받게 된다. 한편, 심사를 받고 재취업한 후에도 퇴직 공직자가 재직자에게 직무 관련 청탁·알선을 한 경우 이 사실을 알게 된 누구든 신고할 수 있도록 해 퇴직자 행위에 대한 상시 관리가 이뤄지게 된다.
공직윤리 강화가 공무원 개인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청렴하고 공정한 공직자에 대한 국민 기대를 생각한다면 아직도 우리 공직사회는 갈 길이 멀다. 다가오는 2020년, 유능함과 더불어 높은 도덕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직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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