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5세대(5G) 이동통신 전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반도체 제조사의 경쟁사 시장진입 봉쇄 행위를 집중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통신칩 제조사인 퀄컴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1조원대의 과징금 부과 취소 소송에서 최근 승소한 기세를 몰아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를 대상으로 추가 조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위원장은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1·4분기 정보통신기술(ICT)팀에 반도체분과를 만들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공정위는 3~4명 규모로 반도체분과를 꾸려 반도체 업계의 칩 끼워팔기나 경쟁사 제품 배제 강요(배타 조건부 거래) 행위를 집중 감시할 방침이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이동통신 기술의 큰 흐름이 바뀌는 시기에 이 같은 불공정행위가 나타났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업계에서는 경쟁당국인 공정위가 5G시대의 핵심인 비(非)메모리 육성 플랜을 내건 정부의 산업정책에 맞춰 측면 지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 유럽연합(EU)은 최근 미국 통신칩 제조사인 브로드컴에 반독점적 사업 관행을 임시 중단하도록 하는 조치를 내렸다. 미국 글로벌파운드리는 지난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중국 당국에 조사 의뢰하는 등 차세대 통신칩 시장에서 반도체 제조사들의 반독점행위를 각국 경쟁당국이 제재하고 나섰다. 다만 조 위원장은 “기업 규모나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기업에 공정한 법 집행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ICT 분야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 조사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내년 초부터 네이버와 구글 등 ICT 분야의 독점력 남용행위를 순차적으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플랫폼 사업 영역에서의 법 위반 행위 유형, 시장지배력 판단 기준 등의 내용을 담은 심사지침도 마련할 계획이다.
차량호출 서비스인 ‘타다’의 혁신성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 위원장은 “가장 진보한 기술을 사용하는 경우 혁신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혁신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굳이 첨단기술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소비자의 편익을 추구한다면 혁신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적으로 차별화된 것뿐 아니라 ‘다른 것’, 즉 기존 시장에 있는 것과 차별화된 것도 혁신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독일계 배달 서비스 업체 딜리버리히어로(요기요·배달통)와 국내 1위 배달앱 업체 배달의민족 간 기업결합 심사에 대해서는 “소비자 후생에 부정적 효과와 혁신을 촉진하는 효과 양쪽 모두에 균형감 있게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1~3위 업체 간 인수합병(M&A)으로 경쟁자가 사라져 수수료가 오르는 방식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과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모두를 따져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조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관행 개선을 위해 “계열사 거래의 비계열사 거래 전환 실적 등 일감 나누기 실적을 반영해 직권조사를 면제하는 식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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