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디지털금융그룹을 ‘은행 안에 은행(BIB·Bank in Bank)’ 형태의 별도 조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전략·예산·인사 등의 자율성을 부여해 디지털 혁신에 발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은행은 디지털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고 영업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을 실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조직개편에 따라 디지털금융그룹은 예산과 인력 운영, 상품개발 등의 독립적인 권한을 갖고 핀테크 기업 투자와 제휴, 오픈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기반의 전략적 제휴 등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앞서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1일 디지털 등 4개 핵심사업에 대해 전 계열사가 통합 조직을 갖추는 사업총괄제를 도입했다. 은행을 포함한 그룹 차원의 디지털금융그룹 총괄은 손 회장이 직접 발탁해 지난해 6월 영입한 황원철 최고디지털책임자(CDO)가 맡는다. 황 총괄은 휴렛팩커드(HP), 하나투자금융 최고정보책임자(CIO) 등을 거친 금융·기술 융합 전문가로 꼽힌다.
앞서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직후 각 사업부가 독립적인 예산·인사·리스크 관리 기능을 수행하는 사업부제를 도입했으나 독립채산 방식으로 사업부 간 시너지를 내기 어렵고 업무 공유가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부각됐다. 이에 전임 행장 시절 사업부제 대신 그룹제로 전환하면서 경영기획·예산·인사 등 경영지원 부문을 별도 그룹으로 분리해 경영 효율화를 꾀했다.
그러나 핀테크에 이어 페이스북·알리바바·스타벅스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바탕으로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테크핀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금융산업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고 새로운 경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체계 도입이 시급해졌다는 게 손 회장의 판단이다. 정통 은행 특유의 느리고 보수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는 혁신을 주도하기는커녕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그룹장제도를 3년 이상 운영하며 조직체계가 안정화됐고 부서 간 협의와 의사소통도 순조로워졌지만 급변하는 디지털 금융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부문만큼은 독립 사업부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손 회장의 판단”이라며 “인사·예산 등을 관련 부서와 협의하고 승인받는 절차 없이 독립적인 권한을 쥐고 빠르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한다면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의 디지털 뱅크를 만들 수 있다는 복안”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뱅킹의 성공 모델을 찾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부터 인력, 예산, 의사결정 프로세스 등 기존 조직의 유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황 총괄의 주장도 반영됐다. 황 총괄은 “디지털 금융에 특화한 인력을 키우고 그에 맞는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을 갖추려면 순환보직과 제너럴리스트 양성이라는 정통 은행의 인사 원칙과 업무 방식에서 분리돼야 한다”며 “대면채널 이상의 비즈니스 무기로서 비대면채널이 효율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모바일 뱅킹 플랫폼도 개편한다. 이달 중 모바일 뱅킹 ‘원터치’를 ‘우리은행(W)이 모바일 금융시장의 새 시대를 연다(ON)’는 의미의 ‘원(WON)’으로 개편하고 ‘원’과 간편뱅킹 플랫폼 ‘위비뱅크’를 중심으로 BIB의 핵심채널을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원’과 ‘위비뱅크’는 대면채널 못지않은 주요 대고객 창구로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핀테크 창업 기업을 위한 테스트베드로서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접목할 방침이다.
또 우리금융그룹의 대표 브랜드(BI)는 ‘원’으로 그룹사 전체의 모바일 브랜드를 통합 관리한다.
이 밖에도 영업력 강화와 수익성 다각화를 위해 글로벌IB금융부·중견기업전략영업본부·퇴직연금자산관리센터 등을 신설했다. ‘글로벌IB 금융부’에 글로벌IB 전담 심사 조직을 확대해 편입하고 ‘중견기업전략영업본부’에서는 중견기업에 특화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 출범 이후 이뤄진 우리은행의 첫 대규모 조직개편으로 변화하는 금융환경과 소비자의 니즈에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며 “특히 디지털그룹의 독립성을 강화한 만큼 은행의 디지털금융의 경쟁력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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