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오브호프(Bank of Hope)는 미국 내 한국계 은행 중 유일한 리저널뱅크(regional bank)입니다. 자본금 1,000만달러로 시작한 한국계 은행이 지금은 미국 은행 5,500여개 가운데 자산 규모 88위로 성장했고 주요 대도시에도 탄탄한 지점망을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에 진출해 있거나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 중 현지에서 도움이 필요한 금융 서비스가 있다면 뱅크오브호프가 나서서 도울 것입니다.”
거래 기업과의 미팅을 위해 1년에 두세 차례 한국을 찾는다는 케빈 김 뱅크오브호프 행장은 지난 14일 서울경제와 만나 “한국계 은행이 대부분 지역에 거점을 둔 커뮤니티뱅크(community bank) 수준이지만 뱅크오브호프는 수차례 합병을 거쳐 주요 주(州) 대도시에서도 영업이 가능한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의 경우 뱅크오브아메리카(BoA)·웰스파고 같은 대형 은행은 내셔널뱅크(national bank)라고 부르고 뱅크오브호프는 그다음 규모에 해당하는 리저널뱅크로 분류된다. 내셔널뱅크는 말 그대로 미국 51개 주 전역에 촘촘한 지점망을 갖추고 있는 반면 리저널뱅크는 대도시 위주로 영업하고 있다. 리저널뱅크는 커뮤니티뱅크보다는 크지만 내셔널뱅크보다는 규모가 작다.
뱅크오브호프는 한인 1세대 이민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만들었지만 지금은 미국 대도시를 커버하는 광역은행으로 성장했다. 미국 내 한국계 은행 가운데서도 뱅크오브호프는 독보적이다. 10개의 한국계 은행 자산 가운데 뱅크오브호프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뱅크오브호프는 지난 2011년 한국계 은행인 센터뱅크와 나라뱅크가 합쳐져 탄생한 BBCN뱅크가 2016년 윌셔뱅크와 다시 합병하면서 총자산 20조원 규모의 은행으로 탄생했다. 김 행장이 BBCN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할 당시 은행 경쟁력을 키우려면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합병을 제안한 끝에 윌셔뱅크와 성공적인 합병을 이뤘다. 회계사·변호사 자격증을 동시에 가진 김 행장은 두 은행 간 합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윌셔뱅크와의 합병 당시 김 행장은 ‘100년 이상 쓸 수 있는 은행 이름을 만들자’는 생각에 직접 뱅크오브호프라는 이름을 제안해 성사시켰다. ‘호프(hope)’는 글자 그대로 ‘미래 성장에 대한 희망’을 담은 것이다. 김 행장은 “뱅크오브호프라는 이름을 떠올린 것은 무엇보다 단순하고 간단해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번역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특히 희망을 뜻하는 ‘호프’는 계급·나이·남녀·인종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단어로, 미래 지향적인 의미를 강조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합병과 브랜딩 작업 과정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뱅크오브호프 행장으로 취임했고 올해부터는 은행 지주사 격인 호프뱅콥의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김 행장은 “한국계 은행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만큼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자신했다. 뱅크오브호프는 앨라배마와 조지아 현대·기아차 공장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들까지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김 행장은 “아시아계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는 대부분 지점이 설치돼 있어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췄다”며 “한국 기업들은 BoA와 같은 전국 은행과 거래하고 싶겠지만 편리하고 최적화된 서비스를 받기에는 우리가 더 수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현지에 진출한 한국 시중은행의 법인보다 장점이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국내 시중은행의 현지법인도 (서비스에)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뱅크오브호프는 대출뿐만 아니라 직원 월급계좌 개설 등과 같은 서비스를 신속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김 행장은 기업고객의 고충에는 일일이 전화로 응대하며 처리해주기로 정평이 나 있다. 김 행장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갑작스럽게 변수가 생겨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 은행에도 한인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지만 이들은 의사결정 권한이 없어 기업고객의 급한 요구에 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뱅크오브호프는 (기업고객에) 급한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고객의 편의를 봐주려고 한다”며 “행장인 내가 직접 전화를 받고 융통성 있는 결정을 해준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 행장은 국내 기업고객과의 접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1년에 두세 차례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뱅크오브호프는 한인 교포와 한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내 멕시코계 등 소수민족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한국계 이민자들이 세운 은행이다 보니 글로벌 이민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고 ‘이민자 은행’이라는 공감대가 있어 고객의 마음을 열기가 쉽다는 게 김 행장의 설명이다.
김 행장은 “뱅크오브호프의 사이즈(자산 규모)가 커졌지만 웰스파고나 BoA 등 톱티어(top-tier) 은행과 대등하게 경쟁하기에는 아직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메인스트림을 겨냥하기보다 특색 있는 니치마켓에서 먼저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 한국 기업과 소수민족 등 새로운 거래처를 계속 발굴해 한국계 은행으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행장의 장기 목표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한국계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설명회(IR)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뱅크오브호프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실제 뱅크오브호프 지분의 88%는 미국 기관투자가들이 보유하고 있다. 1세대 한인 교포들이 만들었지만 뱅크오브호프가 미국 주류 금융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김 행장은 “유대인이 해외에서 성공해 이스라엘의 국격을 높이는 데 지대하게 공헌하고 있듯이 뱅크오브호프도 사명감을 갖고 미국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행장은 미국 경제를 놓고 내년까지 호경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실질적으로 미국 경제는 수치도 좋고 실업률 지표를 봐도 완전 고용 상태”라며 “미국 경제의 호경기 사이클이 역사상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는데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가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격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선 일정 등을 감안하면 타협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김 행장은 “많은 생활용품이 중국에서 오는데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소비자들이 물가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면서 “더구나 농산물 수출이 막히면 미국 농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도 미 정부로서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규제 수준이 강화되고 있는 자금세탁방지에 대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한국 은행들이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행장은 “미국 은행이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해 투입하는 비용은 엄청나다”면서 “특히 무역회사의 자금 흐름에 대해서는 테러리스트 단체로의 유입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강성노조의 폭력 사태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권익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노조가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면 기업 경쟁력은 사라지고 결국에는 노조원의 이익도 지킬 수 없다”며 “미국에서는 노조 활동이 보장되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며 말을 맺었다. /대담=김홍길 금융부장 what@sedaily.com 정리=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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