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와 문화계가 잇따라 서울 종로구 송현동의 한진그룹 부지 활용 방안을 제안하며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부터 반복된 내용으로 ‘현실성 부족’ 등의 이유로 추진되지 못했지만 최근 한진그룹이 부지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앞다퉈 ‘숟가락을 얹는’ 모습이다. 부동산개발 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금 필요한 것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주장보다는 시민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줄 수 있는 종합적인 개발관리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송현동 부지 개발과 관련한 논란의 불을 다시 댕긴 것은 김영종 종로구청장이다. 김 구청장은 다음달 개최하는 ‘송현 숲·문화공원 조성 토론회’에 앞서 최근 송현동 부지를 ‘공공 숲’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건축가 출신인 김 구청장은 지상에는 소나무 숲을 조성하고 지하에는 대규모 주차장을 만들어 경복궁과 연계해 관광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계에서는 서울 도심의 노른자 땅인 이곳을 한옥체험특구 혹은 뮤지엄특구로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는다. 인근에 국립현대미술관·국립민속박물관과 고궁박물관 등이 있고 내년에는 서울공예박물관이 옛 풍문여고 자리에 개관할 예정이라 서울시도 ‘문화센터’ 성격의 공간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나마 부동산개발 업체들이 현실적이다. 도심의 랜드마크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근의 풍부한 역사·관광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호텔이나 공연장·문화시설 등을 만드는 것이 시민들의 편익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개발 업체의 한 관계자는 “경복궁도 녹지고 뒤에 산이 펼쳐져 있는 곳에 굳이 수천억원의 세금을 들여 공원을 만들 이유가 있느냐”며 “사대문 안에 그런 크기의 땅이 없다. 생산적인 활동이 일어나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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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방안에 대한 제안은 넘쳐난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틀에 넣으면 모두 맹점이 있다. 당장 김 구청장의 ‘공공 숲’ 조성 프로젝트는 부지 매입비에 대한 방안이 없다. 김 구청장이 이런 제안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2010년 구청장에 당선된 직후 송현동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비슷한 주장을 했다. 부지 매입 비용은 정부와 서울시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했다. 불가능하다면 현재 종로구청 부지와 맞바꿀 수 있다는 의사도 보였다. 하지만 김 구청장의 제안은 말 그대로 제안에 그쳤다. 이번에도 김 구청장은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비나 시비로 해당 용지를 사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서울시 역시 종로구의 공원화 제안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현재 서울시는 ‘공원일몰제’로 불리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실효제’로 116곳, 95.6㎢의 부지를 사들여야 한다. 올해 공원 매입에 배정된 예산은 약 9,600억원인데 이마저도 8,600억원을 지방채 발행으로 메우는 상황에서 수천억원의 비용을 지원하기는 어렵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관계자도 “올 한 해 공원 부지를 매입할 예산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들여 송현동 부지 하나를 사들이는 것은 국가 차원의 정책 결정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각종 규제는 송현동 부지 개발 방안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부동산개발 업계에서는 송현동 부지 개발을 두고 ‘딜레마’라는 말까지 나온다. 송현동 부지는 기본적으로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묶여 삽만 들이대더라도 문화재청의 관련 심의를 받아야 한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라 상업시설도 들어오지 못하고 건축물 높이도 16m로 제한된다. 이런 규제 때문에 송현동 부지를 매입하려는 주체가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선뜻 규제를 완화할 수도 없다.
연내 매각을 공언한 한진은 현재 제기되는 개발 방안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사모펀드인 KCGI와 경영권 분쟁이 한창인 상태에서 개발과 관련한 입장을 보였다가는 올 초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 방안 등의 진정성에 금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진이 빠진 자리에서 나오는 개발 방안 논의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당분간 송현동 부지 개발은 헛바퀴만 돌 가능성이 높다. 한진그룹의 부지 매각 작업은 조양호 전 회장 작고 후 지분 상속 등 지배구조 문제가 부각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려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내 매각을 완료하려면 이미 주관사 정도는 선정돼야 했는데 연내 매각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송현동 부지 개발이 현실화하려면 우선은 지자체와 토지 소유주 등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려고 하든 종합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며 “개발이 필요하다면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개발이익을 공공에 기여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하고 개발이 필요 없다면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호·조상인·강도원·박윤선·변재현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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