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취약계층의 삶의 질 개선’ 목적으로 고시원 주거 기준을 발표한 가운데 실제 고시원 거주자 사이에서는 서울시 정책이 고시원 주거비용 인상으로 이어지리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돈이 없어 창문도 없는 고시원에 머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결국 더 열악한 주거 환경을 찾아 고시원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20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18일 시내 고시원의 주거 기준을 처음으로 설립했다.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고시원의 경우 방 한 개에 최소 전용 7㎡의 공간을 의무적으로 확보하고 채광창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2009년 이전 설립된 고시원에 대해 ‘간이 스프링쿨러’를 설치해주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번 조치가 일용직 노동자 등 빈곤 계층의 상징적 주거지가 된 고시원을 보다 나은 장소로 탈바꿈하겠다는 목적에서 실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고시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울시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주거 기준으로 인해 그나마 저렴했던 고시원마저 값이 올라갈 위험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장충동, 홍대, 역삼동 등에 위치한 고시촌에서 12년간 거주했다는 김모씨는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서울시의 이번 조치에 대해 “좋은 의도, 나쁜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김 씨는 “서울시는 고시원 사업은 물론 거주민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며 “특히 신설 고시원에 갖가지 규제를 두는 것은 결국 고시원 설립을 어렵게 해 가뜩이나 부족한 방을 더 부족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최소 전용 7㎡의 면적을 확보하게 하고 창문을 달도록 한 신설 규제가 대형 고시원 설립을 막기 위해 ‘총면적제한’을 두고 있는 현행 규제 등과 결합할 경우 고시원 한 개 동에 들어설 객실 수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며 “고시원 사업자로서는 수익률이 떨어지는 결과가 되므로 고시원을 짓겠다는 사람이 더 줄어들게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객실 수가 줄어들 때 사업자가 수익률 상승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수단은 고시원 입실료 인상이다. 이 경우 고시원비 내기도 빠듯한 저소득층은 결국 다른 주거지를 찾을 수밖에 없다. 김 씨는 “주거의 질을 원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고시원에 들어가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서울시의 새로운 주거기준으로 인해 기존보다 큰 면적의 고시원이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월세도 높아질 것”이라며 “주거 개선보다 식비, 교통비, 의료비 등에 소득을 투입하는 저소득층의 소비 특성을 봐도 서울시의 이번 정책은 나빴다”고 답했다.
서울 노량진 근처 대학가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모씨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주거 환경 개선을 꾀하려면 입실료 인상 등을 방지할 수 있는 규제도 같이 행해졌어야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갔다”고 꼬집었다. 고시원 사업자들이 간이 스프링쿨러 설치 지원에 소극적일 것을 대비해 고시원 입실료 동결 기한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여주겠다고 약속한 서울시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각종 대학가 고시원에 사는 학생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으므로 이 부분에서는 서울시가 개입해 고시원 사업자의 이익과 세입자의 주거권 모두를 최대한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발표한 이번 대책은 국토부의 동의 절차를 거친 후 실효성을 가지므로 아직 한 단계의 절차가 남은 셈이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고시원 주거 기준이 가져올 역효과에 대해 “고시원 시설 개선을 통해 입실료가 인상될 것이라는 걱정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를 위해 중위 소득 45~60%에 해당하는 거주민에게 월 5만원의 주거 비용 바우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정책의 핵심은 기존에 혜택을 받지 못했던 고시원 거주민이 주거 바우처 제공 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이 스프링쿨러 설치에 대해서도 “고시원 화재 등의 사고를 막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며 “해당 법안의 통과에는 국토교통부 역시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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