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높이겠다면서 보험료율 인상은 주저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면서 자칫 미래 세대에 과도한 보험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 ‘국민연금 강화론자’인 김연명 신임 청와대 사회수석은 “보험료를 당장 올릴 필요는 없다”며 “기금이 소진되면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저출산·고령화 속도에 대비해 지금부터 조금씩 보험료를 올려가지 않으면 우리 미래 세대는 소득의 38% 가까이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가 지난 8월 내놓은 제4차 재정계산 결과를 보면 국민연금 제도가 현행 9%의 보험료율을 유지할 경우 적립 기금은 오는 2057년이면 바닥을 드러낸다. 그때부터 부과 방식으로 보험료를 걷기 시작하면 2088년 보험료율은 28.8%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부과 방식’이란 미리 기금을 쌓아놓고 이를 굴려 그 수익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적립 방식’과 달리 그해 연금 지급에 필요한 돈을 그해 걷어 쓰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있는 ‘부분(수정)적립’ 방식이다.
그나마 ‘2088년 보험료율 28.8%’도 합계출산율을 1.24~1.38명으로 가정했을 때의 추산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인 1.05명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기금소진 후 2060년에 걷어야 할 보험료율은 29.3%로 치솟는다. 2088년에는 37.7%까지 급증한다. 이미 올해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이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보험료율 인상에 반대하는 일부 국회의원과 전문가들은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 선진국처럼’ 적립식을 부과식으로 바꾸면 된다고 얘기한다. 그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독일과 스웨덴의 사례다. 1981년 세계 최초로 연금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이미 오래전 기금이 고갈돼 부과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부과식 전환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보험료율을 18.7%까지 올렸다. 부과식 전환 이후에도 높은 노인부양비를 보험료 수입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전체 연금 지출의 25%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런 재정 투입은 거의 모든 국민이 연금제도에 가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46.1%에 달하는 만큼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다. 국민 전체가 내는 세금으로 54%의 국민만 혜택을 보는 국민연금을 보조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연금 선진국들도 적립 방식을 완전히 버리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캐나다는 우리나라와 같은 부분적립식을 유지하기 위해 9.9%인 보험료율을 2023년까지 11.9%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개혁을 2014년 단행했다. 스웨덴 역시 기금고갈 후 부과식으로 전환했다가 확정기여형으로 기대여명계수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해 필요보험료율 인상을 억제하는 명목적립식(NDC) 방식으로 재개혁을 이뤄냈다. 전 세계적인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대응하려면 별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인구 구조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고령화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구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립 방식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국민연금의 지속성 확보에 중요하다”며 “보험료는 16∼25% 수준으로는 인상돼야 기금을 유지할 수 있으며 가능한 조기에 인상해야 필요보험료율 수준이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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