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첫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출산율·출생아 수라는 수치적인 목표를 벗어나 아이와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실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의 강한 의지와 달리 관련 사업 예산은 쥐꼬리만큼 올랐다. 그마저도 정책 대상자를 확대하거나 기존 사업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친 탓에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단녀’ 지원…쥐꼬리 예산으로 정책 재탕=지난달 28일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19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 따르면 경단녀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한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 예산은 올해 533억원에서 오는 2019년 565억원으로 6% 오르는 데 그쳤다. 2019년 여가부 전체 예산이 2018년보다 37.4% 늘어난 1조496억원임을 고려했을 때 턱없이 낮은 증가율이다.
30대 여성을 위한 지원책 마련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경력단절여성을 연령계층별로 살펴보면 30대가 51.2%로 가장 많았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 역시 30대가 가장 낮은 M자형 곡선을 그린다. 상황이 이런데 저출산 해결에 가장 큰 역할을 할 30대 맞춤형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새일센터를 통한 취업자 중 30대의 비중은 15.3%에 불과하다.
늘어난 예산은 새일센터를 5개소 확충하고 경단녀를 대상으로 한 교육 및 컨설팅을 강화하는 데 쓰일 것으로 보인다. 새일센터를 통한 취업이 단순 사무직 등 질 낮은 일자리에 치중된다는 비판에도 제도 개선보다는 기존 정책을 재탕하는 셈이다.
◇‘워라밸’ 실현도 물음표=워라밸을 실현해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의 설계가 잘못돼 곳곳에서 집행 부진이 발생하고 있는 탓이다.
출산·육아기 근로자와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일·가정 양립지원 사업은 지난해 119억3,000만원의 예산 중 12억3,000만원(10.3%)을 쓰지 못했다. 실제 참여 인원이 예상했던 인원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출산전후휴가급여와 육아휴직에서도 각각 404억7,200만원과 1,539억5,500만원이 불용됐고 육아기근로시간단축급여에서도 57억8,200만원의 불용액이 발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참여율 저조는 출산·육아로 발생하는 불이익 탓에 일과 가정 양립이 어려운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실효성 있는 보완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재택원격근무 인프라구축지원 사업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새로 시작한 이 사업은 시스템 구축비용을 직접 지원하는 형태와 설비·장비 등의 구입비용을 융자하는 간접 지원 방식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배정된 예산 대부분이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직접 지원 사업에 계획된 14억원의 예산 중 1,600만원만 집행됐고 융자 사업은 전체 28억원의 계획현액이 모두 불용됐다. 수요예측 등을 포함한 면밀한 사업계획이 선행되지 않은 탓이다.
이영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일·가정 양립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단계마다 빈틈이 없어야 한다”며 “정책을 계획하는 시점부터 촘촘하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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