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 한창이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자수는 매년 최고치를 갱신한다. 특별히 연휴가 아니더라도 인천공항은 늘 붐빌 만큼 한국인의 해외여행은 일상이 됐다.
한국관광공사의 4월 해외출국자 연령별 통계를 보면 전 연령대가 전년 대비 증가했는데, 특히 51세~60세는 16.8%, 61세 이상은 30.8%가 증가해 다른 연령대보다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시니어 대상 각국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버킷 리스트의 상위 항목은 항상 여행이 차지한다.
그런 면에서 2013년 시작한 TV 여행 프로 ‘꽃보다 할배’는 신선한 재미였다. 일흔이 넘은 할배들이 젊은 짐꾼의 도움을 받아 젊은이들처럼 구석구석 유럽 자유여행을 하는 것은 시니어들에게 대리 충족의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짐꾼인 이서진은 시니어들 사이에서 ‘로망’으로 떠올랐다. 다들 이런 유능한 짐꾼만 있다면 배낭여행 못할 게 없단 생각이었을 게다.
하지만 최근 시작한 꽃할배 시즌2를 보면서 이서진보다 할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할배들은 그저 짐꾼을 따라다닌게 아니라 실은 준비된 여행자들이었던 것이다. 캐리어 가방을 준비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자유여행 일정을 모두 소화해낼 만큼 건강 관리를 잘해왔고, 여행 내내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관심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배려와 양보, 그 나이대에 있으면 좋을 만한 이상적인 여유로움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부러움과 흐뭇함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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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요소들이 여행 직전 만들어질 수 있는 것들일까. 우리는 안다. 그들의 체력과 호기심, 여유와 위트는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며 노력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런 것들이야말로 은퇴 이후 노년생활을 빛나게 해줄 요소들이다. 단기간에 돈을 주고 얻을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이번 시즌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백일섭의 행보다. 이전 시즌 초반 힘든 일정에 화를 내고 새로운 문화에 당최 관심 없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수술을 한 뒤 컨디션이 최상이 아닌데도 여행에 또다시 합류한 것은 약간 의외다. 그리고 이번 여행길에서 다른 이들과의 속도와 여행 스타일의 차이를 인정하고 쉬엄쉬엄 본인만의 여행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것은 소소한 감동을 준다. 백일섭의 결단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소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라고 했다. 여행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제한된 현실 조건에서 백일섭처럼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인정하고 본인에게 살짝 버거운 목표치를 감내하며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실행해 보는 것이 용기 아닐까.
꽃할배 다음 시즌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준비 잘된 여행처럼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그들의 인생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라는 책 제목이 문득 생각난다. 남은 인생 중에서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의미다. 책제목처럼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기에 하고 싶은 일들을 버킷 리스트에만 적어놓지 말고 젊은 날 할 수 있는 최대의 용기를 내보시라. 빛나는 은퇴 이후의 삶은 꽃보다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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