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태국에서 대홍수가 발생해 혼다·히타치·웨스턴디지털 등 글로벌 기업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당시 소비자가전과 자동차의 세계 공급망이 훼손되면서 글로벌 기술주에 악재로 작용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일반 산업뿐 아니라 금융 부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험사와 은행도 기후변화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폭우, 태풍, 해수면 상승 등으로 건물·공장·농지 등에 예상보다 큰 피해가 발생하면 보험금 지급 규모가 늘어나 보험사의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억제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석탄·석유·석유화학 등 화석연료 관련 회사나 탄소배출량이 많은 회사에 대출을 한 은행이 부실화할 수도 있다. 탄소배출 억제 정책이나 저탄소 기술의 발전이 화석연료의 경제적 가치를 떨어뜨려 이들 회사의 현금흐름과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화석연료의 가치에 대한 시장 참가자의 인식이 갑자기 부정적으로 변할 경우 관련 회사가 발행한 유가증권에 투자한 연기금, 투자 펀드 등에 손실이 발생해 금융 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BOE) 총재는 기후변화 리스크가 금융 불안을 촉발하는 상황을 기후 민스키 모먼트(climate Minsky moment)라고 언급한 바 있다.
국제기준 제정 기구와 주요국 중앙은행 등은 기후변화 리스크의 영향과 대응 방안에 대한 연구·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안정위원회는 2017년 7월 시장 참가자가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나 대출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기후 관련 금융공시에 관한 권고를 발표했다. 시장 참가자가 공시를 활용해 투자 대상 회사의 기후변화 리스크 노출 정도를 평가하고 이를 가격에 적절히 반영하면 자산 가치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기후변화 리스크가 당장 금융 불안의 원인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의 진행 양상과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 이행 속도가 불확실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금융경제 환경이 취약한 시기에 기후변화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금융 충격이 증폭될 가능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한 금융안정 정책당국과 금융기관의 지속적인 점검과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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