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본 서남부 지역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라는 기상청 관계자의 말처럼 사망자만 200명에 이르고 200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대피하는 역대 최악의 재난 피해였다. 재난 강국인 일본도 숨돌릴 새 없이 퍼붓는 물 폭탄에는 손 쓸 새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일본에 폭우가 시작된 지난주, 대한민국에는 일본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경제 폭풍우’가 내려쳤다. 바로 최저임금발(發) 쓰나미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나 급하게 오른 탓에 자영업자·영세상인·아르바이트생은 물론 중소기업·대기업 가릴 것 없이 모두 죽겠다고 아우성인 상황에서 노동계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무려 43.3% 인상된 1만790원을 내민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호를 침몰시키겠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상식과 협상의 수준을 벗어난 요구를 할 수 있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노동계만 눈과 귀를 막고 있는지 몰라도 동네골목에, 우리 옆집에 서민경제가 곤두박질쳐 피눈물을 흘리는 이가 수두룩하다. 최근 최저임금발 부작용을 연재 중인 서울경제신문 기사에도 일자리가 줄고 식당·가게들이 폐업하고 소득이 감소하는 현장의 고통 어린 목소리가 실렸다. 숙대입구역 근처에서 10년 넘게 곰탕집을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아르바이트생을 지난해 4~5명 고용했는데 지금은 2~3명에 불과하다”며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1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는데 지금이 가장 어렵다는 말은 너무나 뼈아프다. 경기 포천에서 포장박스를 납품하는 한모 사장도 IMF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한탄했다. 일본 폭우처럼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경제 재난이라는 것이 소시민들의 이구동성이다.
통계 수치 역시 기록적인 경제 폭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휩쓸려 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핵심인 신규 취업자 수는 6월까지 5개월 연속 10만명 안팎에서 맴돌고 있다. 정부의 목표치 30만명에 턱없이 부족한 ‘고용 쇼크’로 글로벌 금융위기인 지난 2008년 이후 가장 나쁜 수준이다. 청년실업률은 10%대로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저소득층의 충격은 더 심각하다. 임시직과 일용직은 상반기에 월평균 20만명 넘게 일자리가 사라졌고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도소매업에서는 5월 6만명에 가까운 취업자가 감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직격탄이었다는 것이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일자리뿐 아니라 소득도 타격이 크다. 1·4분기 가장 소득이 적은 계층(소득 하위 20%)의 가계 소득은 지난해 1·4분기보다 8.9% 줄었다. 이 역시 역대 최악이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죽을 등 살 둥 하고 있는데도 대한민국의 방재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장 나서 울리지 않는 것인지 울려도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라도 직무유기임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가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어떤가. 청와대와 내각은 경제교과서에도 다루지 않는 소득주도성장 같은 이념형 경제정책에 사로잡혀 국민들을 실험용 대상으로 삼고 있고 내놓는 정책마다 하나같이 친노(親勞)에 치우친 반기업 대책뿐이다. 세상천지에 기업을 배제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나라가 어디 있나. 특히 참모들이 통계까지 왜곡하며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은 물론 우리만이 옳다는 ‘선의로 포장된 아집’은 여전히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 그때의 사상·철학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일본 최악의 폭우 사태가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당시 아베 일본 총리가 술판을 벌인 것이 알려져 파문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시민들이 “이게 위기관리냐”라며 맹비난하는 등 아베 3선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우리 경제 폭우는 1년이 흘렀다. 전국 7만여 편의점주와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불복종 선언을 외치는 등 역시 상황이 심상찮다. 국민을 돌보지 않는 국가에 국민의 인내심이 바닥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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