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셀프 면죄부 논란으로 벼랑 끝에 몰린 사법부가 결국 검찰 고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별조사단은 당초 지난 25일 “형사조치는 없다”고 천명했으나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한발 물러난 셈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에 소속된 김흥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은 2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판사들은 범죄행위를 직접 구성하기보다 이미 구성된 사실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데만 익숙하다 보니 의혹들의 범죄 여부에는 신경을 많이 못 썼다”며 “형사조치가 없다고 단정한 것은 아니고 검찰 수사 요청이 오면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도 검찰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걱정과 실망을 안겨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 지금 결론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부분까지 모두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조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특조단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 고발 여부를) 검토하겠다”며 “추가 혐의가 밝혀지거나 기타 사정이 달라지는 경우 (고발을)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과 특조단이 검찰 고발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은 세 차례에 걸친 사법부의 조사에도 특정 성향 판사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과 청와대의 재판개입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국민적 비판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이날 특조단은 “권한이 부족했다”고 주장하면서 부실조사에 대한 의심을 거두게 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특히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거론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조사하지 못한 데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조사 과정에서 의혹 대부분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만 내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 윤리감사관은 “인사 불이익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인사실로부터 기밀 유출 우려로 구체적 정보를 넘겨받지 못했다”며 “청와대 협조 사례로 제시된 재판에 대해서도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답했다.
사법부가 사실상 셀프 조사의 한계를 자인하면서 조만간 사법농단 수사의 공은 검찰로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검찰이 사법부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선 전례가 없는 만큼 실제 적극 수사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준사법기관으로서 판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압수수색·구속 등 각 수사 단계마다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올 1월 시민단체가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공공형사수사부에 사건을 배당하기만 하고 수사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사법부에 칼을 겨누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사법부와 행정부 수장이 합의해서 작정하고 수사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성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