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털이 많은 사람을 보면 야만스럽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만화에서도 힘은 세지만 단순하고 우직한 사람을 몸에 털이 많은 인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 분류로 볼 때 인간은 포유류의 일종이며, 대부분 포유류는 온몸이 털로 덮여있다. 포유류라도 몸에 털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고래를 들 수 있다. 물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몸의 털이 불필요해 진화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에 거쳐 퇴화한 것이다. 인간도 원래는 털이 온몸을 덮고 있었지만, 옷을 만들어 입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퇴화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 때문인지 몸에 털이 많으면 진화가 덜 되고 야만스럽게 여겨지는 것 같다.
하지만 털이 없는 사람에게도 모발, 수염, 겨드랑이털, 음모, 눈썹 등은 남아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털은 다른 부위와 다르게 진화 과정 중 퇴화하지 않았을까? 필요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까?
먼저 가장 중요한 모발을 생각해보자. 모발의 역할은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외부의 물리적 충격을 완화해 뇌를 보호하고 태양광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한다. 흔히 직사광선에 많이 노출되면 탈모가 일어난다고 알려졌는데 약간의 영향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극히 제한적이다. 축구선수처럼 온종일 자외선에 노출돼도 눈에 띌 정도의 탈모가 생길 가능성은 낮으므로 탈모를 걱정해서 외출까지 꺼릴 필요는 없다.
눈썹은 비가 내릴 때 빗물을 눈으로 흘러들어 가지 않게 한다. 음모나 겨드랑이털은 충격이나 마찰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땀이 배었을 때 완충 작용을 한다.
그렇다면 수염은 어떤 역할을 할까? 수염은 남자의 2차 성징으로 여성과 구분하게 해주고 때에 따라서는 여성을 유혹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요즘 여성들이 수염 있는 남성을 안 좋아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수염을 기른 남성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수백 년 수천 년이 흐르면 남자들의 턱에서 수염이 자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필자의 병원에는 간혹 수염이식을 위해 내원하는 분들이 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특정 부위만 이식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염은 콧수염, 턱수염, 구레나룻 등으로 나뉠 수 있는데 수염 전체를 이식하려는 분은 거의 없고 자신의 개성과 외모를 살리기 위해 콧수염이나 구레나룻 등 일부만 이식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에는 턱수염과 구레나룻을 포함해 전체 수염을 이식한 분이 있었다. 필자도 굳이 그렇게까지 수염이식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의아해서 여쭤보니 직업이 뮤지컬 배우인데 항상 수염 붙이는 배역만 들어와 땀띠까지 생기고 불편해서 이식하려 한다고 말했다. 수염이식이 외모를 위한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때에 따라서는 꼭 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수염이식은 모발이식과 마찬가지로 주로 후두부 모발을 채취해서 턱이나 구레나룻 등 수염이 없는 부위에 이식하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이식한 수염을 면도하고 오신 후 면도한 부위가 왜 파릇파릇해 보이지 않느냐고 따지는 분이 계셨는데, 사실 수염이식으로 면도한 후 푸르스름하게 보일 정도로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발이식과 마찬가지로 수염이식도 정상밀도에 가깝게 이식 것이지 정상밀도로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머리칼은 수염보다 가늘기 때문에 모발로 수염이식한 후에도 외국인처럼 풍성해 보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요새는 여성분들이 구레나룻이식을 하기 위해서 내원하시는 경우가 많다. 구레나룻의 사전적 의미는 귀밑에서 턱까지 난 수염인데 여성들은 주로 귀밑 머리나 애교머리 등 귀 앞쪽 부위의 성형을 위한 이식이기 때문에 여성의 경우 구레나룻이식은 일부만 맞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여성 구레나룻이식은 측면헤어라인교정, 애교머리 이식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염같이 눈에 쉽게 띄는 털 이외에도 인간의 피부는 작은 솜털들로 덮여 있어서 피부감각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신체 부위 중 털이 없는 곳은 입술과 손바닥, 발바닥 등이다. 손바닥과 발바닥은 반복적인 마찰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퇴화한 것이고 피부와 점막의 경계부위로 입술은 좀 괴이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내장의 점막이 밖으로 돌출된 부위라고 보면 된다. 솜털조차 없는 서로의 손과 손을 접촉하는 것이 연인 간 스킨십의 시작이라면, 스킨십의 종착역은 키스일 텐데 손을 잡는 것과 달리 키스를 하게 되면 서로의 속살과 체온을 느끼게 되어 하나라는 느낌이 더 생기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okhairline@naver.com
옥건 원장은···
▲가톨릭의과대학 졸업 ▲옥건헤어라인의원 원장 ▲국제모발이식학회(ISHRS) Best Practical Tip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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