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2013년 부경대 교수 시절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 이론을 발표했다. 서민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주면 소비와 투자가 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이론이었다. 이론은 더불어민주당 등 국회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손쉬운 해결책이 매력적이었다. 임금만 높여주면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얘기여서 솔깃했다는 것이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소득주도성장론이 나왔을 때 논리적 근거가 약해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소득주도성장은 새 정부의 모든 국정 운영 방향의 근거가 되는 국가 경제이론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 이론에 따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정책 흐름에 경제학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서강학파가 24일 ‘한국경제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라는 세미나를 열어 소득주도성장론의 허점과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한 것이다. 서강학파는 서울대 상대 출신의 학현학파, 조순학파 등과 함께 대표적인 국내 경제학계 학파로 꼽힌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미나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이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한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인위적인 임금 상승은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실제 2000~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통계를 실증분석한 결과 생산성에 비해 실질임금이 기존보다 1%포인트 높아지면 경제성장률은 약 0.2%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생산성 대비 임금 상승률을 대폭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박 교수는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 인상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투자 등 공급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나 이는 대부분 경제학자의 상식과 분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 기업은 자동화 기계 등 자본으로 고용을 대체시킬 유인이 커지고 이는 대량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 축소는 소비·투자 등 모든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최저임금은 대기업보다 외부 충격에 약한 영세·중소업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런 경향을 더 키울 수 있다. 토론자로 나선 김상겸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1회성 경기 부양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소득주도성장론자는 우리나라는 노동 생산성이 늘어난 만큼 임금이 충분히 오르지 않아 임금 인상 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2008~2012년 중소제조업체의 명목임금 상승률과 생산성 증가율은 각각 4.7%, 4.8%로 거의 일치한다”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저소득층 소득을 늘리려면 재정 투자로 하는 것이 맞고 지속 가능한 성장은 투자와 경제활성화를 유도하는 규제개혁과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개혁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