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행 35%인 법인세를 15%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역시 30%였던 법인세율을 지난 2012년 25.5%, 2016년 23.4%로 꾸준히 낮춰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달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3%포인트 올리는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뿐 아니라 대기업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와 설비투자 세액공제를 축소하는 등 세율이 오른 것 못지않게 감경액이 줄어들며 기업의 부담이 대폭 커졌다. 정부는 주요20개국(G20) 평균 법인세율이 25.7%임을 들며 국제적으로 봐도 높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은 경영 부담이 커진 반면 미국과 일본 기업은 상대적으로 R&D나 투자 여력이 훨씬 커졌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외국과 비교할 때 우리 기업들이 불리한 조건,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 힘들다. 조금이라도 틀에서 벗어나면 사정없이 내리치는 철퇴(제재)와 쏟아지는 규제 탓이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의 정부가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고 각종 걸림돌을 풀어주며 자국 산업을 키우고자 발 벗고 나서는 동안 우리 기업은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외국과 달리 갈수록 악화하는 기업환경도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6.5% 급등했고 국회에서는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25일에는 정부가 저성과자 일반해고 절차, 취업규칙 변경요건 등을 담은 양대 지침을 공식 폐기했다. 성과가 나빠도 직원을 내보낼 수 없고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어떤 취업규칙에도 근로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는 손을 댈 수 없어 고용 유연성을 경직시키는 조치다. 미국·프랑스 등 세계 각국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노동 유연성을 키우고 일본은 엔저에 수도권 공장 입지규제 철폐로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는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버텨온 국내 기업마저 인건비 상승과 규제 강화로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옮겨야 할 판이다. 새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지만 각종 반(反)기업 대책들이 쏟아지는 통에 기존 일자리마저 사라질 상황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규제한다고 만든 대책은 되레 외국 기업의 배만 불렸다. 프랑스에서 온 제과 브랜드 ‘콘트란쉐리에’는 2014년 서울 서래마을에 1호점을 연 뒤 3년 만에 점포를 30여개로 늘렸다. 미국에서 온 ‘매그놀리아베이커리’, 일본의 ‘살롱드몽슈슈’ 등도 강남을 중심으로 노른자위에 가게를 열고 있다. 외국계 빵집이 국내 시장을 마음껏 누빌 수 있었던 데는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같은 국내 프랜차이즈의 손발을 묶어놓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영향이 크다. 제과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점포 확장을 가로막아 동네 빵집을 살린다더니 외국계 브랜드만 날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셈”이라며 “누구를 위한 규제냐”고 하소연했다.
정보기술(IT)이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임지훈 카카오 대표는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왜 한국 업체인 카카오와 네이버만 강한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혁신하고 있는 운동장에 우리도 같이 뛸 수 있게 해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정치나 정책과 거리가 있는 IT 기업 대표까지 정부를 향해 날 선 발언들을 하겠냐는 시장의 안타까운 목소리도 들린다. 최근 국회에서는 ‘뉴 노멀법’이라는 이름으로 네이버와 카카오를 이동통신사 같은 기간통신사업자로 분류해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장 지배력을 떨어뜨리는 규제로 반사이익을 보는 곳은 엉뚱하게도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초대형 기업들이다. 구글은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를 통해 네이버의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또한 10대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카카오톡의 입지를 조금씩 흔들고 있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캠퍼스서울이 7월 발표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권 스타트업 사업의 70%가량이 국내 규제에 저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택시 ‘우버’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때문에, 새로운 관광숙박의 대안으로 떠오른 에어비앤비는 공중위생관리법 때문에 한국에서 영업이 불가능한 식이다. 똑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미국에서 창업하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영업조차 못 하는 셈이다.
금융투자 분야에서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정보를 차단하는 ‘차이니즈 월’이 국내 증권사의 성장을 가로막아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길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기업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겠지만 한국 산업 경쟁력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불확실성을 없애주고 장기적으로 성장전략을 짤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진혁·심희정·양철민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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