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병원을 직접 찾아가 전문의를 만나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 없이 직접 유전자 검사를 의뢰해 결과까지 알 수 있는 ‘DTC(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 지난해 9월부터 국내 유전자 전문기업들이 서비스에 본격 돌입했지만 아직까지 시장에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행 1년이 다 되고 있지만 전문가 도움 없이 직접 검사를 받고 결과지를 해석하는 것은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부터 사실상 검사를 할 수 있는 항목이 턱없이 적어 유전자 검사로서 의미가 없다는 등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유전자 검사가 무엇인지, 검사 결과를 아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 수준도 저조하다.
DTC 검사가 어떤 도움이 될지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검사를 받아봤다. 이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 결과지 해독은 쉬운지, 검사 결과는 믿을 만하며 건강 관리에는 실제 도움이 되는지 등 꼼꼼히 따져봤다.
◇1단계-간편한 이용=‘소비자 직접 의뢰’라는 취지대로 가장 먼저 체감하는 장점은 역시 편리한 이용이었다. 제품 상자에서 기다란 면봉을 꺼내 입안 구석구석에서 세포를 채취, 함께 동봉된 수송 튜브에 넣고 뚜껑을 꼭 잠근 후 반송 봉투에 넣어 연구소로 다시 보내면 끝이다. 이에 앞서 홈페이지상에서 유전자검사 동의서를 작성하고 키와 몸무게, 질병 여부 등에 대해 응답하는 문진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5분 안에 끝났을 정도로 간단했다. 물론 정확한 이용법은 시간을 들여 상세히 읽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기자는 급하게 서두르다 입안 세포를 두세 번만 가볍게 긁어 보냈는데 뒤늦게 20회 이상 강하게 채취하는 편이 좋다는 설명서를 보고 검사가 실패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딱 열흘 뒤 받아든 검사지에서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기술 수준이 높고 검사 정확도 역시 상당한 수준이라는 생각에 내심 만족스러웠다.
◇2단계-검사 결과에 울다 웃다=도착한 결과지를 확인하는 일은 제법 긴장됐다. 마치 학교 때 성적표를 받아보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첫 느낌은 좋았다. 기자가 이용한 녹십자지놈의 ‘진닥터(genedoctor)’는 건강관리 항목이 정상이거나 유전자 변이가 없을 때 파란색을, 변이가 있거나 주의를 요할 때는 빨간색으로 표기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는데 기자의 화면은 일단 파란색 비율이 상당했다. 타고난 건강 체질을 내심 자랑했던 기자로서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결과였다. 특히 두 가지 유전자 변이 유무를 따져보는 모발 검사에서는 “축복받은 건강한 모발”이라는 찬사까지 받아냈다. 원형탈모 발생률을 높인다는 유전자(IL2RA)와 머리카락을 얇게 만든다는 유전자(EDAR)가 검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피부검사 결과는 아쉬웠다. MMP1 유전자는 콜라겐 분해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자에게는 해당 유전자의 변이가 검출돼 체내 MMP1 수치가 60%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일반인 대비 피부 탄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라니 앞으로 피부관리에 신경을 좀 써야겠다고 결심해본다.
체질량지수(FTO)·중성지방농도(GCKR)·혈당(SLC30A8)·혈압(FGF5)·콜레스테롤(CETP)·카페인대사(AHR) 등 6가지 항목의 이상 여부를 알아보는 대사종합검사를 살펴볼 때는 기자도 모르게 심호흡을 내쉬게 됐다. 건강 상태와 직결되는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일명 ‘비만 유전자’로 불리는 FTO와 관련된 변이는 발견되지 않았고 혈압·당뇨에서도 불안 요소는 없었다. 다만 혈중콜레스테롤 수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전 요인이 검출, 일반인 대비 좋은 콜레스테롤(HDL-C) 수치가 평균 5% 감소하고 나쁜 콜레스테롤(LDL-C) 수치는 평균 1%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결과를 접하니 마음이 다소 복잡해졌다. 성인병 관련 기사에서나 접하던 콜레스테롤 수치가 내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받아들고 ‘앞으로는 햄버거나 피자를 줄여야 하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3단계-건강관리는 결국 자신의 몫=기자의 경우 유전자 검사를 받아본 후 한동안 인터넷 포털 창에서 콜레스테롤을 검색하거나 건강 기사를 챙겨보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말 받아본 건강검진 결과표를 다시 찾아보곤 HDL-C 수치를 경계해야 한다는 문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동안 콜레스테롤의 ‘ㅋ’에도 관심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엄청난 발전이라고 자찬하는 중이다.
결과지는 단순히 유전자 변이 유무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절한 대처 방안까지도 제시했다. 추천 식품과 성분, 운동법 등도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기자의 경우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을 1대1 비율로 하는 편이 좋고 카페인 대사 영향을 고려해 커피는 하루에 1.75잔만 마시는 게 좋다는 식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줘 이해하기가 쉬웠다.
다만 ‘건강 염려증’ 등 건강에 유독 예민한 사람들은 유전자 검사에 심사숙고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유전자 변이 유무는 관련 질병 혹은 증상이 일어날 확률을 높인다는 의미일 뿐 그 병에 걸릴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비만이나 탈모 유전자가 있다면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노릇. 무리한 다이어트를 거듭한다거나 보조제·약 등을 과잉 섭취한다면 이 또한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