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가 사상 처음으로 설 예약 판매를 12월 초에 시작한다. 장기 불황으로 내수가 곤두박질치고 있는데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소비위축이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연말 특수가 실종될 모습을 보이자 유통업계가 평년보다 설 행사를 보름 이상 앞당겨 분위기 반전에 나선다는 심산이다. 통상 12월 초에는 겨울세일 등 각종 할인전과 크리스마스 마케팅 등 대형 이벤트로 분주한데도 이 기간에 설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소비절벽에 처한 유통업계의 심정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이르면 다음주부터 내년 설 명절 사전예약 판매에 돌입한다. 내년 설이 1월28일인 점을 감안하면 50여일이나 미리 예약 판매에 돌입하는 셈이다. 이마트가 12월 초에 설 예약 판매에 나서기는 창사 이래 처음이다. 이는 설 당일 기준으로 39일 전인 2015년 1월12일부터 행사를 시작한 2015년 설과 46일 전인 2015년 12월25일부터 행사에 돌입한 올 설에 비해서도 훨씬 빠른 스타트다.
대형마트의 맏형 격인 이마트가 명절 분위기를 대폭 앞당기려 하자 롯데마트도 명절 사전예약 판매를 55일 전인 오는 12월5일부터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예년과 비슷한 수준인 12월12일께 행사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경쟁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일주일가량 일찍 시작하기로 전략을 선회했다. 지난해 롯데마트는 올 설(2월9일)보다 50일 전인 12월21일에 사전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대형마트들이 설 사전예약 판매 일정을 앞당겨 사상 처음으로 12월 초에 명절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소비심리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각 도심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이를 TV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쇼핑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꺾이고 있어 역대 최악의 연말이라는 평가다. 특히 시국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소비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장기 불황으로 침체된 소비가 올 3·4분기를 기점으로 조금씩 살아나는가 싶었는데 갑작스런 최순실 사태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완전히 닫은 모양새다.
실제로 지난 3·4분기 기존점 매출이 지난해 대비 1.4% 신장으로 돌아선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4.4%까지 올라가며 승승장구하던 이마트는 이달 들어 매출신장률이 3.0%로 다시 내려갔다. 트레이더스·일렉트로마트 등 신규 점포 성적까지 모두 더한 이달 전체 매출액도 10월 기록한 매출 신장률 11.5%에는 크게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3·4분기에도 국내 매출이 지난해보다 감소한데다 영업적자까지 기록한 롯데마트는 이달 들어서도 매출이 0.09% 역신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최순실 게이트에 집중되다 보니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해도 예전보다 관심이 덜 하고 새로운 행사를 열 엄두도 안 난다”며 “12월에도 혼란스러운 정국 때문에 한동안 촛불집회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전망이 지극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들은 유례없이 이른 12월 초 설 사전예약 판매 개시를 반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다. 전체 명절 판매액에서 사전예약 판매 비중이 매년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소비진작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첫 명절이라는 점에서 설 특수에 대한 기대를 접은 고가 제품 위주의 백화점과 달리 김영란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형마트들은 설 행사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2012년 설 사전예약 판매 비중은 전체의 1%대에 불과했지만 2013년 추석을 기점으로 10%를 넘은 데 이어 올 추석에는 무려 21%까지 올랐다. 올 설 예약 판매 매출액은 지난해 설에 비해 무려 51%나 증가하기도 했다. 사전예약 판매가 최순실 사태로 등 돌린 소비자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비행기 표처럼 명절 선물도 미리 주문하면 그만큼 싸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형마트들도 이제 본 판매보다 예약 판매 실적 높이기에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윤경환·신희철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