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절벽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의 당선에 따른 대내외 복합 충격에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에 비해 6.1포인트 급락했다. 이는 한은이 소비자동향조사를 월별로 추계하기 시작한 후 역대 네 번째로 큰 폭의 추락이다.
가장 충격이 컸던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지난 2008년 10월이다. 당시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11.5포인트 하락했다. 두 번째는 리비아 사태 등 중동의 ‘재스민 혁명’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던 2011년 3월(-10.1포인트), 그리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내수가 얼어붙었던 지난해 5월(-6.7포인트)이 세 번째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소비자심리지수 하락 폭은 3.8포인트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소비심리지표와 실제 소비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2011년에는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과 관계없는 단순 대외 충격이었고 실제 그해 1·4분기 민간 소비는 전기 대비 1.1% 증가했다. 지난해 메르스 당시 민간 소비가 전기 대비 0.1%포인트 줄기는 했지만 이도 전염병으로 인한 단기 효과에 그쳤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소비자심리지수는 말 그대로 심리지수라서 대내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많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통상은 소비심리가 떨어지는 것만큼 소비가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 양상과는 달리 실제 소비절벽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우선 가계소비 여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소비 여력을 위축시켜 3·4분기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71.5%)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 기대에 시중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점도 소비 제약 요인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통상 가계 빚이 늘어나면 자산효과 때문에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최근 우리 가계부채는 너무 과도한 탓에 되레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단기 부양책에 잠깐 살아나는가 싶던 내수도 최근 다시 하향세로 돌아서고 있다. 실제로 올 9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4.5%나 감소했다. 메르스 당시인 지난해 6월(-2.4%)과 비교하면 뒷걸음질 정도가 두 배에 가까웠다. 가계소비의 선행지표라 할 수 있는 영화 관람객 수도 급감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11월 영화 관람객 수는 945만5,000명(24일 누적기준)이었다. 이는 10월(1,716만명) 관람객 수의 55%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1,527만6,000명)과 비교해도 62% 수준이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정국 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 당선 효과도 보호무역주의 정책 등이 구체화될 경우 우리 경제에 악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 악화에 컨트롤타워의 부재, 더욱 커지는 외부 충격으로 소비심리 위축이 과거와는 달리 ‘소비절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경기 지표가 나오는 내년 초 경제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소비심리 충격이 성장률 하락 등의 지표로 확인되는 순간 내수가 더욱 가라앉으면서 소비절벽이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한편 다양한 내수 부양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경제 컨트롤타워 재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연구부장은 “내년 상반기에 당초 예상보다 지표가 안 좋게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며 “공기업 투자 확대, 예산 조기 집행 등 일반적인 정책뿐 아니라 정부가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보다 강력한 조치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