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구조조정 1순위로 거론되는 해운업은 선박 공급과잉으로 운임이 바닥을 기면서 정부나 채권단 도움 없이는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2013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자구계획을 수립해 3년 가까이 자산을 매각하고 경영 효율화에 나섰지만 속절없이 떨어지는 운임을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채 채권단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게 됐다.
2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해운업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 선박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시작된 불황이 지금까지 장기화하며 건실하던 업체마저도 부실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오랜 불황 속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해운업종의 특징상 언제든 호황기가 찾아온다면 과거 부실을 모두 덮을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자산을 매각하고 경영을 효율화하며 버텨왔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량 매각한 데 이어 벌크전용선, 국내외 터미널 지분 등을 팔고 대한항공으로부터 긴급자금을 수혈받으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현대상선은 2011년 3,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매년 적자가 누적돼 부채 규모가 6조원대에 이르면서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사업과 컨테이너, 초대형 원유운반선, 자사주 등을 매각했다.
그러나 해운사들의 기대와 달리 운임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상하이에서 유럽으로 가는 컨테이너 운임의 경우 2012년 TEU(6m 컨테이너)당 평균 1,379달러였지만 2015년에는 반토막인 620달러로 추락했고 올해 들어서는 200~300달러선을 맴돌고 있다. 국내 선사들이 주력으로 하는 미주 노선 역시 바닥을 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저운임 상황을 뚫기 위해 해운사들은 노선을 조정하고 인원을 줄이는 등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고용선료(선박임대료)의 늪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지난해에만 용선료로 각각 1조8,793억원, 9,288억원을 냈다. 선박은 통상 10년 이상 장기임대가 대부분이다. 지금보다 운임이 5~10배 높던 해운 호황기에 빌린 배들은 용선료가 당시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요즘처럼 운임이 바닥을 길 때는 아무리 영업을 해도 손해가 나는 구조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3년간 온갖 노력을 다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답답하다”며 “지금 같은 저운임과 매달 고용선료를 꼬박꼬박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해운업의 또 다른 축인 벌크선의 경우 이미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주인이 바뀌거나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최근 하림그룹에 매각된 팬오션이나 삼라마이더스(SM)그룹 소속의 대한해운은 지금은 흑자구조지만 과거 고용선료의 부담에 줄줄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결국 선대 규모가 대폭 쪼그라들며 중소형 선사가 됐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운사의 경영 실패에도 책임이 있지만 한국 수출산업과 해운업 지위 등을 고려할 때 해운업은 단순히 시장논리에 맡겨서는 안 된다”며 “국가적으로 지금의 위기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해운 경쟁력을 키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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