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기온이 20도를 웃돌며 본격적인 봄의 문턱에 들어선 가운데 여기저기 주변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직장 동료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시기다. 특히 점심 후의 나른함과 밀려드는 졸음은 정말로 참기 힘들 정도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는 춘곤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춘곤(春困)의 단어 뜻은 ‘봄 춘(春)’, ‘괴로울 곤(困)’이다. 뜻을 해석하자면 ‘봄날에 느끼는 나른한 기운의 증세’라는 정도로 풀이된다. 춘곤증은 공식적인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다.
이상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봄이 오면 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쏟아지며 식욕도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런 현상을 흔히 춘곤증이라 한다”며 “봄을 맞아 기온이 올라가면서 신체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데 반해 우리 몸이 이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일종의 피로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한 4월에 신체 적응력이 떨어지고 피로가 가중되면서 춘곤증 발생이 많아진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춘곤증은 일시적인 환경 부적응증으로 피로를 특징으로 하며 봄철 1~2주 정도 나타나며 밤이 짧아지고 피부 온도가 올라가면서 근육이 이완돼 나른한 느낌을 갖게 된다”며 “또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단백질·비타민·무기질 등 각종 영양소의 필요량이 증가하는데 겨우내 이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생기는 영양 불균형도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춘곤증은 겨울철 운동량이 부족한 사람이나 피로가 누적된 사람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춘곤증이 나타나는 정확한 원인도 아직 밝혀진 것은 없으나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생리적인 불균형 상태가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겨울철에는 추위라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인체 내에서 소위 항스트레스 호르몬인 부신피질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고 결과적으로 각종 비타민들이 소비된다.
봄철 일조시간이 길어지고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추위에 적응하던 생리적 변화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해 또다시 많은 부신피질 호르몬을 필요로 하는데 체내에 각종 비타민이 모자라는 상태에서 충분한 호르몬이 분비될 수 없어 적응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겨우내 추운 날씨 탓에 신체적인 운동량이 모자라게 되고 결과적으로 몸의 각 부위 근육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자연히 활동량이 많아지게 되면 신체 기능의 부조화로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다.
아울러 봄철에 생활주변에서 각종 변화의 요인이 많아지게 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춘곤증의 원인이다.
성은주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대개 봄철에는 졸업과 입학, 취업과 이직, 새로운 사업의 시작 등 생활의 변화가 많아지게 되고 이것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해 춘곤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춘곤증은 고혈압·당뇨 등의 만성질환과 같은 정식 질환이 아닌 만큼 직접적인 치료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식생활 습관을 조금만 개선해도 춘곤증의 악화를 막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정한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지켜 최소한의 수면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봄철 춘곤증 예방을 위해서는 6~7시간의 숙면은 필수다.
이 시기에는 숙면을 위해 가급적 침대 위에서의 스마트폰 사용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5~10분 정도의 짧은 낮잠도 춘곤증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단 낮잠시간을 20분 이상으로 길게 하는 것은 신체 리듬을 파괴해 밤잠을 설치게 할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
낮잠을 잘 때는 책상에 엎드려 자기보다는 목을 감싸는 형태의 목베개를 활용해 목이 앞이나 뒤·옆으로 꺾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겨우내 굳은 몸을 풀어주는 마사지를 수시로 하는 것도 좋다. 눈 주변을 3초 정도씩 지그시 눌러주면 눈 주위 근육이 이완돼 피로감이 줄어든다.
목 옆쪽의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후 귀밑에서부터 사선 방향으로 내려오는 근육을 손가락 3개 정도로 눌러주면 된다.
주먹을 가볍게 쥔 후 옆 머리 근육을 지그시 누른 상태에서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여준다. 이때 약간의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마사지해주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비타민과 단백질·칼슘, 각종 무기질 등의 섭취도 늘려야 한다.
특히 냉이·머위·달래·씀바귀 등 봄나물의 경우 비타민C 등이 포함돼 있고 소화를 촉진하고 입맛을 돋워줄 수 있는 만큼 제철 봄나물 섭취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냉이의 경우 특히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이나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 좋다. 피를 맑게 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해주면서 변비를 완화시키고 소변을 시원하게 보게 한다. 눈을 맑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머위는 칼슘·인·니아신·비타민C 등과 17가지나 되는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다. 달래의 경우 양기를 보강하고 정력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어 특히 남성에게 좋은 봄나물로 추천할 만하다. 자주 섭취하면 위염·불면증 등의 증상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씀바귀는 치네올이라는 정유 성분이 들어 있어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이밖에 원추리와 두릅·더덕·돌미나리·부추 등의 봄나물은 입맛을 돋우고 피로 회복에 좋은 비타민C와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미역·파래·다시마·김 등의 해조류는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미자는 건조한 봄철에 최고로 좋은 음식이자 약재로 우려내 차로 마시면 감기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춘곤증 등의 봄철 피로증상이 3주 이상 지속될 경우 만성피로를 의심하고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송대웅 의학전문기자 sd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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