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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A자산운용의 중국펀드에 가입한 백모(38)씨는 지난달 29일 비과세 해외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증권사 지점에 문의했다가 울화통이 치밀었다. 2,000만원을 투자해 1년이 채 안 된 지금까지 30% 넘는 손실을 기록한 것도 억울한데 중국펀드에서 투자금을 빼내 다른 비과세 해외펀드로 갈아탈 때 수수료를 또 내야 했기 때문이다. 백씨는 "모든 해외주식펀드를 비과세 펀드로 인정해주면 굳이 다른 펀드로 갈아탈 이유가 없을 것 아니냐"며 "비과세를 이유로 펀드 갈아타기를 강권하면서 또 수수료를 떼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어차피 손실을 본 펀드이기에 새 펀드 가입보다 손절매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 1년간 해외 증시 펀드 수익률은 평균 -14%로 주요국 대부분에서 손실을 냈다.
지난달 29일 성황리에 출시된 비과세 해외주식전용펀드가 투자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대규모 손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신규 가입 때 또다시 수수료를 내야 한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환차익과 투자수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은 등록된 신규 해외주식전용펀드에만 국한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새 계좌를 개설한 뒤 현금 이전만 가능하도록 한 국민자산증식 정책이 기존 투자자 보호보다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1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운용 중인 2,562개 해외주식펀드 가운데 비과세 해외펀드로 등록된 상품은 310개로 전체의 12.09%에 그쳤다. 펀드 대부분이 비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자 기존 펀드를 환매하고 비과세 해외펀드로 갈아타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비과세 펀드로 갈아탈 경우 부과되는 수수료 부담이 투자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펀드에 가입할 경우 부과되는 수수료는 클래스마다 다르지만 투자금액의 2~3%쯤 된다. 일반적인 펀드의 A클래스는 선취 수수료를 떼는 대신 운용기간에 부과되는 판매수수료가 낮고 C클래스는 선취수수료가 없는 대신 운용기간에 부과되는 수수료가 높은 편이다.
저금리 시대에 대규모 운용손실을 본 투자자로서는 2~3%의 수수료 부담이 만만찮다. 예컨대 글로벌 해외펀드에 500만원을 투자한 뒤 1개월이 채 안 돼 4%의 수익(20만원)을 낸 투자자가 비과세 해외펀드로 갈아탈 경우 이익금의 50%인 환매수수료 (10만원)와 각종 수수료(15만원)를 떼게 되면 비과세 해외펀드에 투자하는 돈은 최초 원금보다 적어질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S자산운용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1%대인 저금리 시대의 수수료율이 2~3%라는 것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며 "특히 손실을 본 투자자 입장에서는 1%라도 아끼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사와 운용사만 이익을 볼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해외 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수료율(선·후취 수수료 제외)은 1.77%로 국내 주식형펀드(1.38%)보다 훨씬 높다. 운용사나 판매사 입장에서는 국내펀드보다 해외펀드를 파는 것이 유리한 셈이다. 그래서 이번 비과세 해외펀드 도입으로 업계의 이익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K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사실 금융투자 업계 입장에서는 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ISA)보다 비과세 해외펀드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국내 주식형펀드 수탁액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비과세 해외펀드는 금융투자 업계에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새로운 비과세 상품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비과세 상품만 따로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계좌 개설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펀드를 현금으로 환매한 뒤 현금을 이전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수수료 문제에 정부가 나서면 '가격통제'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시장에서는 정부에 해외펀드 활성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 비과세 해외펀드는 정부가 경상수지 누적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달러를 해외로 퍼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비과세 해외펀드를 도입하기로 한 지난해 6월 달러당 1,100원대조차 위태롭던 원·달러 환율은 1,240원으로 치솟았다.
시장 관계자는 "쌓이는 달러를 해외로 배출하자는 측면에서 도입된 마당에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현시점에서 해외펀드를 활성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며 "당국이 나서지 않는데 업계가 자율적으로 수수료 문제를 해결해나갈 가능성은 작다"고 지적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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