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외산에 안방 내줄라'
기재부 상한제 완화 의지 커 "내년 3월까지 점검 후 결정"
"요금제 다양화 등 긍정 효과"
미래부·방통위 신중 입장 불구
'경쟁' 강조 경제부총리 임명 땐 반대 의견 고수 쉽지 않을 듯
기획재정부가 휴대폰 보조금(공시지원금) 상한을 내부적으로 현행 33만원보다 최대 2배가량 올린 60만~70만원까지 검토하며 내년 상반기 중 방송통신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와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이동통신사들의 불공정 영업행위를 막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의 틀은 유지하되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가격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17일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재부와 소관 당국이 휴대폰 공시지원금 인상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며 "지원금상한제 폐지론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는 단통법을 고쳐야 하는 어려운 절차가 필요하고 시장과열을 막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고려해야 하므로 방통위 고시를 조정해 규제를 다소 풀어주는 쪽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기재부 안대로 휴대폰 보조금이 최대 2배까지 인상된다면 국산 중저가폰은 거의 공짜로 살 수 있고 고가폰의 실구매비용도 20만~30만원까지 낮아져 최저 10만원대 출고가격에 국내 시장 집중공세에 나선 중국산 스마트폰에 맞설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큰 수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지원금상한제를 완화하더라도 이통사들이 고객에 대한 지원금 지급 수준을 달리하는 것을 방지하는 '차별금지' 조항 등이 있어 과거처럼 이통사들이 (일부 고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호갱'으로 만드는) 불공정영업을 할 여지가 많이 사라졌다"며 "이제 이통사 간 경쟁을 촉진해 내수를 살리고 외국산 스마트폰의 저가공세에 대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통위와 미래부는 미온적인 입장이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내년 3월 중 시장 점검을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6월까지 제도 보완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휴대폰 보조금(공시지원금)을 인상하려는 것은 단통법 규제로 인해 국내 신규 휴대폰 시장이 침체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통법으로 이동통신사들의 출혈경쟁이 줄고 영업 투명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소비자들은 초기 휴대폰 구매비용이 상대적으로 올랐다는 착시 현상을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국산 고가 휴대폰 구매가 줄고 중국 등의 해외 저가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 전자업체 임원은 "최근 중국 샤오미, 화웨이 제품은 물론이고 대만 폭스콘 등이 주문자상품제조방식(OEM)과 주문자개발방식(ODM)으로 중국에서 생산한 저가폰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국내 제조사들은 해외로 공장을 옮기기 힘들어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며 "더욱이 공시지원금 규제에 묶여 우리업체들이 안방시장 마저 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통사들의 가격 경쟁도 시들해지면서 휴대폰 판매점들의 매출이 줄며 고용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의 한 판매점주는 "지원금 상한제 규제 이후 연휴, 대목에도 손님이 크게 줄었다"며 "요즘 수능심험을 마친 학생들과 크리스마스 쇼핑객들로 붐벼야 하는데 손님이 뜸하다"고 전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1년6개월이 되는 내년 3월까지 그 성과와 한계를 중간점검하겠다"며 "이통산업의 공정경쟁을 위한 법적 토대는 살려두되 방통위 고시를 손질해 합리적으로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와 미래부 등 소관 부처들은 "가계 통신비가 일부 절감되고 데이터 요금제 출시나 중저가폰 확산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고 휴대폰시장이 성숙기에 들어섰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방통위 의 한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중 시장점검을 할 예정이지만 아직은 지원금 상한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방향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들 역시 "휴대폰 공시금 높인다고 바로 고가폰이 많이 팔리겠느냐"며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 정책위원회의 한 실무자는 "차기 경제부총리로 거론되는 면면을 보면 시장경쟁 촉진과 고용활성화를 강조하는 그룹"이라며 "미래부나 방통위가 기재부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병권·윤경환·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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