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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55> 을미년의 위기? 기회로 활용하는 방법

2014년 12월17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언니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을 빚었다. 이후 조 전무는 SNS를 통해 늦은 사과를 했지만 그간의 행적에 비추어 볼 때 진정성이 없다며 비판받았다. 사진은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사과내용을 밝힌 조 전무의 SNS 캡처화면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은 수많은 리더들에게 감명을 준 명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안감에 떨 때, 고민하지 말고 위기를 정면돌파하라는 관점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경기 전망이 좋지 않은 올해 경영자들에게도 ‘위기는 기회’라는 프레임이 절실합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숱한 사건 사고, 기업 차원에서는 상식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갖가지 해프닝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나 역학 전문가들은 60갑자 중 갑오년과 을미년이 제일 불안한 시기라며 작년과 올해의 불운을 정해진 시나리오인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갑오년의 경우에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청일 전쟁과 같은 국가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을미년도 1895년 명성황후가 미우라 고로를 비롯한 일본 로닌들에게 살해당한 충격적인 사건, 1955년 대규모 아사를 몰고 왔던 기근과 같이 비극이 많았던 해였습니다. 주역에 따르면 ‘음’(陰)의 기운이 두 개나 있는 올해는 예전과 다름없이 위난(危難)의 우려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용 장식이나 붉은 색 쿠션 같은 것으로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경영자들 이야기도 들려 옵니다.

이래저래 위기는 사람들의 행동이 경직되게 만드는 기능을 하나 봅니다. 조직심리학자 스토우(Staw)는 토끼가 사냥 당할 때 꽹과리 소리나 사람들의 괴성과 같은 신호에 놀라 몸이 굳어져서 포박당하는 상황을 빗대어 ‘위협 시의 경직’(Threat rigidity)이라는 개념을 창안하기도 했습니다. 위기 때 가장 큰 문제는 의사결정자의 자신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승부사 케네디는 자신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 조차 대중 정치의 한 차원으로 발전시킨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사업이 본전을 까먹을까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경영자들에게는 더없이 멀고 험난한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서도 조심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기업이라면 재무, 회계 등 안살림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비용 처리하는, 즉 투자 또는 내부 관리비 개념의 지출을 줄이고 가급적 보수적인 운영을 하도록 제안합니다. 과거 어느 대기업에서도 외환위기가 닥치자마자 공격적인 신시장 진입 전략과 글로벌 서비스 도입을 추진하던 기획팀의 역할을 줄이고 내부 통제와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한 재무팀의 비중을 높인 바 있습니다. ‘조직이 어렵다’는 말을 할 권리, 또는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할 권리가 있는 부서는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셈이니까요.

그러나 위기는 사실상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급변하는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 대처하는 조직의 자세입니다. 우선 상황이 어려워지면 많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전체 기업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조성된 위기 차원에서 ‘열심히 하자’ ‘정신 차리자’는 말을 자주 하는 의사결정자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위기는 경영자 자신이 ‘태평성대’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수많은 부하 직원들의 자기 관리 부족으로 사태가 악화됐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명분이 됩니다. 최근 ‘복수하겠다’며 법정 구속된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가 그 내용이 공개되어 수많은 비난을 샀던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케이스가 그렇습니다. 조직을 대표하는 몇 안 되는 경영진의 입장에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 일을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합니다’며 문제의 근원을 확산시키는 자세는 진정성 없는 접근이라고 공격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임직원 공개 성명은 위기를 돌파해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문제의 프레이밍으로 인해 오히려 화를 더 키웠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반대로 우리 기업의 창업주 세대는 위기가 생길 때마다 그 책임을 자신에게 지우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누군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만두게 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되려 스스로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유능한 부하들이 사업을 전담할 수 있도록 처신하거나, 과감하게 후계자에게 자리를 승계하고 사실상 상담역의 입장에서 최고경영자의 자리에서는 할 수 없었던 현장 경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경기의 변화에 관계없이 기술 투자가 중단되지 않은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입니다. 주식 전문가들이 호황일 때 돈을 벌어서 불황일 때 적극적으로 투자하라는 역발상 투자 개념을 말했던 원리가, 이들의 경영 전략에서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셈이기도 합니다.



을미년 새해가 밝은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올해에도 위기를 적극 돌파해 보고자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강조하는 리더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성으로 누군가를 그만두게 하는 전략으로 내부 단속을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실적 부진은 과거에 그가 내린 의사결정으로 말미암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을미년의 위기가 진정한 기회로 탈바꿈하려면 최종결정권자의 자기 객관화란 전제조건이 먼저 이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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