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본지 창간39돌] 로저 쿠바리치 회장과의 대담
입력1999-08-01 00:00:00
수정
1999.08.01 00:00:00
『현재의 주가는 개혁의 미래에 대한 기대치의 반영입니다. 만일 개혁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5년간 주가가 상승하겠지만, 구조조정이 중단되면 주가는 하락하게 될 것입니다.』카우프만 & 쿠바리치 컨설팅사의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로저 쿠바리치씨(55)는 뉴욕 월가의 투자은행에 있는 한국 전문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본의 논리와 시장 경제만 주장하지 않고, 한국 경제의 특수성·역사성 등을 많이 이해하는 편이다. 그는 한국 재벌의 소유 분산을 무리하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정부의 적절한 외환시장 개입을 두둔한다. 그의 사무실에서 한국경제 전반에 관해 의견을 나눠보았다. 대담에는 정보영한국은행 뉴욕사무소장이 동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_한국 경제가 너무 빨리 회복돼 위험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급격한 경기 침체 후에 빠른 회복이 있다고해서 비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 언제라도 사용가능한 대규모 생산능력의 토대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급격한 경제회복은 당연합니다. 침체의 규모가 크고 속도가 빠를수록 가파른 회복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경쟁력을 갖느냐가 중요합니다.
완만한 회복이 빠른 회복보다 낳다는 생각은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위험한 것은 구조조정이 멈추는 것입니다. 구조조정은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RVENANCE)를 개선하고, 투자 결정을 신중히 하고,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_재벌에 대한 국내외 비판이 높습니다. 재벌이 구조조정을 꺼린다는 것입니다.
경제발전 단계가 다르면 기업 조직도 다를 수 있습니다. 재벌은 과거 20년 동안 효율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재벌은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자본 조달과 국제 기준의 기업 지배력 도입, 주주 권리 확보 등 여러 가지가 재벌 개혁에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재벌의 소유 분산에 대해 나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에 의한 기업지배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한국서도 그렇지만, 인도와 나이지리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가족이 기업을 소유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들은 소유 분산을 싫어합니다.
재벌 문제의 해결책은 과도한 부채구조 청산에 맞춰져야 합니다. 주식을 가급적 많이 공개하는 대신 부채를 줄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은 정부 정책 뿐 아니라 경제 메카니즘에 따라 도입되어야 합니다.
방법중 하나가 멕시코의 방식입니다. 멕시코에서는 이자세를 일부 환급해주는 조건으로 저리의 대출을 유도하는 제도가 있었으나 페소화 위기 이후 폐지했습니다. 가족 중심으로 경영되는 기업들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였지요. 멕시코의 대기업들도 많은 점에서 한국 재벌과 비슷하고, 비효율적입니다. 그들은 세금 환급 조건이 붙은 저리의 대출제도를 활용, 엄청난 부채를 끌어들였어요.
그러나 멕시코 재무부는 페소화 폭락 이후 저리의 은행 여신을 없애고 증권시장에서 조달한 자금과 동일한 세율을 적용했습니다. 그랬더니 패밀리가 운영하는 멕시코 대기업들은 과거처럼 은행 부채에 의존하기 어려워졌고,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한국 정부도 멕시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세 규정을 바꾸어 이자에 대한 세율을 높이면 재벌들이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벌들이 적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요.
공공분야의 핵심인 은행은 경제에 있어 안전망과 같습니다. 한국에선 은행들이 재벌들에게 많은 대출을 해주었는데, 결국은 정부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경기가 불황으로 돌아서면 언제라도 안전망에 구멍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재벌 부채를 줄이고, 증시 상장을 촉진하기 위해 여러 방법 가운데 과세 구조개선 방식을 권합니다. 이 일환으로 외국인들의 한국 기업 인수를 원활히 하고, 개인투자가든 뮤추얼 펀드건 외국인들의 한국 시장 접근을 용이하게 해야 합니다.
_경기가 회복되면서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아직은 아닙니다. 앞으로 그럴 수 있겠지요.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게 나타날 경우 경제에 여러가지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인플레이션의 첫번째 수혜자는 기업입니다. 기업들은 가격을 올림으로써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질질 끌게 분명합니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상적인 방향은 세제 변화와 아자율 변화를 동시에 꾀하는 것입니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병용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합니다. 중앙은행에만 의존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인플레이션 억제론자를 지지합니다. 인플레이션은 중장기 개혁에 절대로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_증시가 단기 급등으로 등락이 심합니다. 과열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요.
증시 과열을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증시가 아주 좋았다고 할 수 없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올랐다가 떨어지는 동요현상을 지속했습니다. 위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동요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지난 87년 대폭락(블랙 먼데이) 이후 주가가 줄곳 상승했지만, 한국의 주식시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 기업들의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장래성 있는 사업, 이익이 나는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상당한 기술력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기업부문에서 상당한 펀더맨털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재벌 기업과 장래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업에 주식에 고루 투자했는데, 이들 기업이 효율성을 갖게 된다면 주가가 과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증시 상승은 미완의 개혁이 가져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중단되면 주가는 하락하게 될 것입니다.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개혁이 중단되면 증시는 하락합니다.
_삼성자동차가 파산 직전에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을 전망해주시지요.
자동차 산업은 국제적으로 대단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경쟁력 강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어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생산시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계 자동차업계의 경쟁력 강화는 설비 과잉을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과거 산업이지, 미래의 산업은 아닙니다. 자본을 집중해야 하고, 변화가 어려운 업종입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앞으로 2~3개로 정리될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앞으로 5년후 세계 자동차 업계에 5개의 글로벌 기업만이 남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다임러_크라이슬러사입니다. 일본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볼보와 포드의 제휴도 이런 추세의 일환입니다.
자동차 회사는 이제 국경을 넘어선 소유권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 내에서 1등 기업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개별 공장이 글로벌 기업내에서 생산을 특화하는 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 대형차는 미국에서 생산하고, 브라질과 멕시코·아시아에서는 소형차를 생산하는 식입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5년 후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으나, 글로벌 기업에 계열관계를 갖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_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장 개입이 나쁜 것입니까.
외환시장 개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가 시장질서 유지를 위한 개입입니다. 외환시장이 극단적으로 움직여 통화가 지나치게 강세를 보이거나 약세를 보일 때 개입하는 것이지요.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동으로 시장에 개입,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적절한 행동입니다. 특정 환율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지요. 둘째, 목표환율(TAGET ZONE)을 위한 개입이 있습니다. 일본이 이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엔_달러 환율에서 엔화가 일방적으로 강세를 보일 때 일본 정부가 단독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목표하는 엔화 환율이 얼마인가에 대한 신호를 시장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첫번째 개입을 선택하고 있는데, 적합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헤지 펀드들이 환율을 떨어뜨릴 때 개입할 필요는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시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시장 개입을 할 필요가 있고, 이는 성공할 것입니다.
_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만일 한국의 개혁이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요.
위기가 심각할 때 사람들은 마지 못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위기가 지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정리해고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월이 좋아지는데, 노동합리화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중장기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단기적인게 아니에요. 장기적인 투자 과정과 적절한 재원분배 등 이런 것들을 고치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국제규범에 맞게 적응해야 해요. 따라서 현재의 진척 상황만으로 개혁의 점수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모든 나라에는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개혁 주체인 정부가 후퇴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개혁 반대세력과의 협상에서 작은 것은 타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커다란 원칙은 그대로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김대중 정부는 그동안 짧은 시간에 강력한 경제팀으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 이후에도 개혁이 유지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고 있어요.
/INKIM@SED.CO.KR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