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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이춘길과 바위섬

[경제수필] 이춘길과 바위섬조선족 안내인 이춘길. 그는 창바이산(장백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자기가 작사 작곡한 「천리 압록강」을 부르고 옌볜 조선족 동포라면 누구나 「칠갑산」을 부를줄 안다고 소개한다. 「칠갑산」의 작곡가 조운파씨는 지난 1977년 추석을 고향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칠갑산을 보고 우리 토속어가 떠오르면서 즉흥적으로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국악 가락으로 설움을 토해내는 「칠갑산」은 천리 압록강과 곡지(谷地) 두만강을 건너 풍상의 삶을 살아온 조선족 가슴에 이음줄로 가닿은 것이리라. 하얼빈 태생인 이춘길은 93년 베이징 민족학원 예술계(藝術系)에 들어가서 중국 민족음악(작곡)을 공부했다. 이어 96년 10월 중국 국비로 평양 김일성종합대학교 예술부에 유학하여 3년간 조선 민족음악을 전공했다. 그는 평양 유학에서 돌아와 압록강을 보고 「천리 압록강」의 악상을 얻었다고 한다. 국비유학을 했으므로 중국 국가 여유국(旅遊局) 한국부에서 2년간 근무할 의무를 지고 옌볜 여행사 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음악 전공자인 만치 음악적 감수성을 창바이산 안내에 활용하는 것이 이춘길이다. 노래로 좌중의 정서를 묶고 선율로 좌중의 심정 사슬을 이으려 한다. 그리고 보면 남북으로, 객지로 흩어진 동포들의 마음을 잇는데 노래처럼 좋은 이음줄은 없어 보인다. 그는 또 북조선에서 유행하는 남한 노래는 「바위섬」이라고 전했다. 남한에서 「바위섬」은 80년대 들어 남쪽에서부터 인기의 폭을 넓히면서 북상한 노래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해에 나와 광주의 의지와 한을 상징하는 노래로 해석되고 대학가에서부터 유행했다. 이춘길에 따르면 96년 평양 대학에 다닐 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바위섬」이 유행했다. 지난해에 나진에 갔을 때도 「바위섬」이 여전히 유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춘길은 「바위섬」의 내용이 건실해서 북한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춘길도 이산가족이다. 한국방송공사 이산가족찾기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부산 해운대에 사는 큰할아버지를 찾은 것은 97년이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여 맨먼저 보자고 한곳이 칠갑산인데 『막상 가서 보니 그저 민둥산이더라』하며 웃겼다. 그가 함흥 서쪽 파바리 마을에 사는 누이동생을 찾은 것도 비슷하 시기이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83년 창바이산을 보고 『창바이산을 오르지 않으면 평생 유감이다(不登長白山 終生遺憾)』라는 말을 남겼다. 백두산 등산기로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따를 것이 없다. 최남선은 1926년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보고 감격하여 147행의 「대백두 대천지의 탄덕문」을 지었다. 한국·조선·옌볜에 걸친 이산가족 이춘길은 남북교류가 활발해져서 조선쪽으로 백두산 등산길이 열려도 밥줄이 끊어질라 염려하지 않는다. 북한으로 가서 칠갑산·바위섬·천리 압록강을 부르며 안내인 노릇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安炳璨(경원대 교수)입력시간 2000/09/07 16:42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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